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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선 46] ‘새해’는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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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1일 18:00 프린트하기

금요일에 시작해서 토요일에 끝나는 2016년은 빠듯한 서민 생활처럼 마지막 날까지 바둑판 모양 달력에 숫자가 빼곡하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번에는 새해가 되고 나서야 탁상 달력을 교체할 듯하다. 나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달력을 보고 생활을 체크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마다 생활환경에 따라 각각의 라이프 스케줄이 다르겠다. 흔한 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잡부나 노점상 상인 같은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해나 달이 뜨고 질 때까지가 그 고단한 시간이겠고, 교회나 학교나 체육관 등에서는 일주일 단위로 일의 스케줄이 잡힐 터이다.

 

GIB 제공
GIB 제공

월간지 종사자들의 라이프 스케줄은 한 달 주기로 돌아간다. 일의 성격뿐만 아니라 금전의 수입과 지출 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직장인 역시 매달의 월급으로 갖가지 생활 스케줄을 짜야 하니 한 달의 주기에 묶여 살아가고 있다. 또한 자영업을 하는 임차인이나 건물 소유주인 임대인도 매달 월세를 주고받는 시간이 고통스럽거나 기다려질 터이니 마찬가지로 한 달씩 마감하며 생활하고 있다. 어부들은 계절 단위로 풍어(豐漁)를 희망할 것이다. ‘봄 도다리, 여름 병어, 가을 전어, 겨울 방어’라는 말뿐만 아니라, 곳곳의 어촌 인근 바다마다 꽃게, 새우, 멸치, 문어, 오징어, 키조개, 주꾸미, 굴 등의 해산물들이 계절에 따라 건져 올려지니 말이다. 또한 반년이나 1년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농민의 생활이 그럴 테다. 노지든 비닐하우스든 이모작 밭농사를 짓는 농민은 반년 단위로 작물을 키워내고, 논이나 과수원에서는 1년 주기로 땀을 흘리고 농한기에는 일손을 놓는다.


그러니 해[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야 고대 이집트인들이 천문 관측을 하면서 발견한 태양력의 시간 단위지만, 실생활에서 해가 바뀐다는 것은 1년을 주기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에게나 실감나는 시간의 단위가 아닐까(한 학년 올라가 학교생활이 바뀌는 학생들도 그렇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1년 단위를 세분화한 ‘절기’에 따라 그분들은 시간을 활용하고 농사에 임할 테지만, 실상 나 같은 일반 도시인에게 신년 벽두의 의미는 단지 비가역적 시간, 즉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새해에 들어 예사롭지 않게 느끼는 한때일 따름이지 않을까.

 

GIB 제공
GIB 제공

내 경우에 새해는 지난해의 달력을 치우고 새해의 것으로 바꿔놓을 때 시작된다. 그럼에도 정작 해가 바뀌었음을 절감할 때는 다른 곳에 있다. 도장과 통장을 들고 방문한 은행이 그곳이다. 대기 순서 번호표를 뽑고 ‘찾으실 때’ 용지 금액란에 숫자 몇 개를 적은 후 습관적으로 지난해 연도를 써버렸을 때가 그때다. 그러니 제야의 종소리와 동시에 1초 만에 해가 바뀌어도 새해는 곧장 우리 심신에 찾아오는 게 아니다. 새해를 느끼는 시간은 칼로 두부 자르듯 단번에 구분되는 게 아니라 마치 그 두부를 데치기 위해 찬물에 소금을 넣고 가열하기 시작해서 실제로 물이 데워지고 끓어오를 때 비로소 한 해가 바뀌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다시 그러니,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라는 만해의 시구처럼, 한 해는 가(갔)지만 2016년을 금세 떠나보내거나 새해를 덥석 맞이하기 어려운 게 우리네 마음일 것이다. 새해가 되어도 지난해 달력은 잠시 남아 있듯이, 그 달력에 메모하던 손동작들은 이미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우리에겐 그 습관의 기억이 한동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앞모습만 보이는 시간의 뒷모습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듯 새해는 느닷없이 나타나는 폭포수가 아니라, 완만한 강물의 배에서 문득 지나온 물길을 바라보는 이의 등 뒤에 있다. 시간이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만 남기고 물살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임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깨우치는 마음에, 새해는 가만히 스며드는 것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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