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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만 년 전 동아시아에는 머리가 아주 큰 사람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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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14일 11:00 프린트하기

2007년 12월 중국 허난성 쉬창현 링징 마을의 들판에서 척추동물고고학고인류학연구소(IVPP)의 고고학자 리장양 박사는 10만여 년 전 구석기시대의 도구들을 발굴하고 있었다. 짐을 싸고 철수할 무렵 석영으로 된 아름다운 석기(石器)를 발굴하자 일정을 이틀 늘렸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아쉬운 마음에 발굴지를 둘러보다 인류의 두개골 조각을 하나 발견한다.


리 박사는 그 뒤 연구소의 고생물학자들과 함께 2014년까지 발굴을 계속해 모두 46점의 두개골 조각을 찾았다. 뼈는 조각조각 났지만 변형은 되지 않아 마치 깨진 화분 조각을 맞추듯 손으로 두개골 두 점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연대측정 결과 이들 화석은 10만5000~12만5000년 전의 것들로 밝혀졌다.

 

중국 동부 허난성에서 발굴된 약 11만 년 전 인류의 두개골 ‘쉬창 1’은 눈 위 뼈가 튀어나와 있고 납작하면서 좌우 폭이 넓다. 무엇보다도 뇌용량이 1800cc에 이르러 현생인류보다 훨씬 크다. 아래 지도는 화석이 나온 링징(Lingjing site)의 위치를 보여준다. 왼쪽 위에 보이는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까지 4000km 떨어져 있다. - 사이언스 제공
중국 동부 허난성에서 발굴된 약 11만 년 전 인류의 두개골 ‘쉬창 1’은 눈 위 뼈가 튀어나와 있고 납작하면서 좌우 폭이 넓다. 무엇보다도 뇌용량이 1800cc에 이르러 현생인류보다 훨씬 크다. 아래 지도는 화석이 나온 링징(Lingjing site)의 위치를 보여준다. 왼쪽 위에 보이는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까지 4000km 떨어져 있다. - 사이언스 제공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지만...


학술지 ‘사이언스’ 3월 3일자에는 이렇게 재구성한 두개골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보존도가 높은 ‘쉬창 1’ 두개골의 뇌용량을 계산해보자 무려 1800cc로 나왔다. 이는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의 뇌용량인 1250~1400cc보다 훨씬 크고 머리가 큰 걸로 유명한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평균인 1600cc보다도 큰 값이다. 실제 네안데르탈인 가운데 최대값은 1736cc이고 현생인류도 최대값이 그 수준이다.


쉬창 1 두개골은 정수리가 낮고 옆으로 퍼졌다. 그 결과 좌우 폭이 가장 넓은 지점의 길이는 지금까지 측정한 인류의 두개골 가운데 가장 길다. 또 다른 두개골인 ‘쉬창 2’는 뼈가 부족해 뇌용량을 계산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적어도 네안데르탈인 수준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머리가 큰 사람들은 누구인가.


두개골 모양을 보면 먼저 네안데르탈인처럼 눈 위의 뼈가 툭 튀어 나온 게 눈에 들어온다. 분석 결과 내이(內耳)를 이루는 뼈의 구조도 현생인류보다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했다. 그렇다면 당시 네안데르탈인이 동아시아까지 진출했다는 말인가.


그러나 논문에서 저자들은 이들을 그냥 ‘고(古) 호모(archaic Home)’라고 쓰고 있다. 얼핏 네안데르탈인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눈에 띠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유럽과 중동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눈 위 뼈의 돌출 정도가 덜하고 두개골 두께도 약간 얇다는 것이다. 납작하고 옆으로 넓은 두개골 형태도 네안데르탈인에서 좀 벗어났다. 그렇다고 새로운 학명을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두개골 외에는 얼굴뼈도 턱뼈도 없고 골격을 이루는 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사실만 서술하고 있는 논문과는 달리 같은 호에 실린 기사의 분위기는 이번 발굴에 대한 고인류학계의 흥분을 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고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어는 “논문 저자들을 뺀 모든 사람들이 이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다. 영국 런던대의 고인류학자 마리아 마르티논-토레스도 “중국이 인류 진화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지난 2010년  DNA 게놈 해독으로 데니소바인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이 고인류의 삶의 여정이 재구성됐다. 즉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에서 약 4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갈라졌고 그 뒤 데니소바인은 동진을 해 일부는 시베리아로 일부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오세아니아까지 갔을 것이다. 이번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이라면 동남아로 꺾이는 지점에서 동북쪽으로 새로운 선을 그려야 할 것이다. -  John D. Croft 제공
지난 2010년  DNA 게놈 해독으로 데니소바인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이 고인류의 삶의 여정이 재구성됐다. 즉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에서 약 4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갈라졌고 그 뒤 데니소바인은 동진을 해 일부는 시베리아로 일부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오세아니아까지 갔을 것이다. 이번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이라면 동남아로 꺾이는 지점에서 동북쪽으로 새로운 선을 그려야 할 것이다. -  John D. Croft 제공

데니소바인이 주인공?


2008년 러시아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약 4만 년 전 인류(아이)의 손가락 마디뼈 하나가 나왔다. 당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박사팀은 뼈를 건네받았고 2010년 추출한 DNA에서 게놈을 해독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대략 40만 년 쯤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새로운 인류로 밝혀져 ‘데니소바인’으로 불렸다. 그 뒤 동굴에서 어른의 어금니 두 개가 더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게놈분석결과 역시 데니소바인(남성)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현생인류 가운데 호주와 뉴기니 등 남태평양 일대의 원주민들에서 데니소바인의 피가 5%나 흐른다는 발견이다. 그밖에 아시아인들에도 1% 미만의 영향을 미친 걸로 나왔다. 한편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아시아인들에 2% 내외의 흔적을 남겼다.


페보 박사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고품질의 DNA 정보를 확보했음에도 데니소바인의 생김새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다만 어금니가 현생인류의 것보다 1.5배나 더 크고 네안데르탈인의 어금니보다도 커서 외모는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원시적으로 생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수준이다. 아무튼 화석이 넘칠 정도로 많은 네안데르탈인과는 달리 데니소바인은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데니소바 동굴에서 남동쪽으로 4000km 떨어진 중국 땅에서 두개골들이 발견됐고 그 형태가 예측 범위 내에 들어 있는 것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장-자크 후블린은 “이번 중국 화석은 (데니소바인으로 보기에) 장소도 딱 맞고 시기도 딱 맞고 특징도 딱 맞는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정작 발견자들은 “누구도 데니소바인이 어떤 인류였는지 알지 못한다”며 “우리가 아는 건 그들의 DNA서열이 전부”라며 선을 그었다. 물론 연구자들 역시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고 뼈 조각 세 개에서 DNA 추출을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다.

 

중국 남부 후난성에서 발굴된 약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치아로 현대인의 치아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이 발견으로 대략 6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시아에 도달했다는 기존 가설이 타격을 입었다. - 네이처 제공
중국 남부 후난성에서 발굴된 약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치아로 현대인의 치아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이 발견으로 대략 6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시아에 도달했다는 기존 가설이 타격을 입었다. - 네이처 제공

북쪽에는 고 호모 남쪽에는 호모 사피엔스


중국에서는 이전에도 데니소바인일 가능성이 있는 발굴이 더 있었다. 이번에 두개골이 나온 허난성(河南省)의 바로 위 허베이성(河北省)의 쉬지아야오(Xujiayao) 유적지에서 발굴한 턱뼈 일부와 치아 아홉 개를 분석한 결과 10만~12만5000년 전으로 밝혀졌는데 어금니가 크고 튼실해 데니소바인의 어금니를 연상케 했다. 이 결과는 2015년 학술지 ‘미국신체인류학저널’에 실렸다.


사실 최근 수년 사이 중국에서는 놀라운 고인류학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네이처’에는 중국 남부인 후난성(湖南省) 다오시안의 한 동굴에서 8만~12만 년 전 치아 47개를 발굴했다. 그런데 그 형태가 현대인의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확실한 호모 사피엔스의 치아였다. 즉 이미 10만 년 전에 동아시아에 호모사피엔스가 살고 있었다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게다가 앞의 데니소바인으로 추정되는 화석들과 그 시기가 겹친다. 즉 10만 년 전 중국 위쪽에는 고 호모가 아래쪽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살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들이 서로 교류했는지 또 오늘날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증이 더해간다. 지금까지 고인류학 분야에서 아프리카에 쏟아 부은 인력과 비용, 시간에 비하면 아시아 발굴은 미미한 편이다. 따라서 앞으로 또 얼마나 놀라운 발견이 이어질지 기대감이 높다. 중국 척추동물고고학고인류학연구소는 최근 110만 달러(약 13억 원)를 들여 고인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연구실을 만들었다.


이번 두개골이 발굴된 지점과 한반도는 1000km가 조금 더 되는 거리다. 그리고 10만 년 전이면 한반도는 반도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데니소바인의 뼈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릴 날을 꿈꿔 본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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