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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시선 57] 꼬깃꼬깃한 마음을 꺼내놓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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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18일 18:00 프린트하기

근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근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생활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종종 호주머니 속에서 손에 잡히는 종이쪽지처럼 만지작거리지 않을까. 그런 마음조차 없다면 열반에 든 선승이거나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일 테다. 그리고 근심하거나 소망하는 마음의 주소는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현장에 있다. 그 번지수가 쓰인 종이쪽지를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고 사람들은 좋든 싫든 기쁘든 슬프든 분주하든 외롭든 당장의 오늘을 살아간다.

 

iweatherman(F) 제공
iweatherman(F) 제공

그러다가 어디선가 그 종이쪽지를 꺼낼 때가 있다. 그곳과 그때는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의 유사성이 있기에 공통점도 있겠다. 그 ‘때와 곳’이 어떤 이들에게는 퇴근 후 늦은 시간의 조용한 술집이기도 할 테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일요일 아침의 예배당이기도 할 테고, 여가시간에 찾아가는 스포츠센터나 낚시터나 산이기도 할 테다. 또한 산행 길에 들른 사찰의 대웅전이기도 할 것이다. 예정 없는 발길에 이끌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합장을 하고 섬돌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가 향연(香煙)의 방향을 돌리며 불상을 향해 절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배례는 마음의 호주머니 속에서 때때로 만지작거려 꼬깃꼬깃해진 근심이나 소망을 꺼내놓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지난 2월 말일부터 3일간 양산 통도사와 경주 불국사를 경유해 여행했다. 평일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통도사 대웅전 안에서 합장을 하며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공양을 드리는 그분들은 절을 올릴 때마다 지그시 눈을 감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주름진 자기 마음을 꺼내 무엇을 소망하며 기원했을까. 그 마음은 말로도 소리로도 드러난 표시가 없어 나는 알 수 없었다. 진지해 보이는 그 침묵의 불공을 바라보며 그저 방해가 되지 않게끔 그 공간에서 조용히 벗어날 뿐이었다.


기원하는 마음의 물리적인 표시나 흔적이 없으면 소망하는 그 마음을 받아주기를 바라는 대상이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 우려의 생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여전해서일까, 그 물리적 표시로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바치는 모습은 흔하다. 신전에 살아 있는 가축을 제우스 신에게 바친 일은 기원전에도 있었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값을 치른 심청은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 인당수에 뛰어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犧牲, sacrifice)이라는 말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자의나 타의로 목숨이나 이익을 버리거나 잃거나 바침을 뜻한다. 이처럼 그 말뜻은 본래는 ‘제사용 희생물’로서의 의미였다.

 

양산 통도사 연목에 던져진 동전들 - 윤병무 제공
양산 통도사 연목에 던져진 동전들 - 윤병무 제공

내가 다녀온 통도사, 불국사, 분황사에도 그 소망과 기원의 표시가 한데 모여 있었다. 나무 상자로 만든 불전함(佛錢函)은 물론이거니와 10kg 단위의 공양미 묶음들이 불상 앞에 나열해 있었고, 통도사 경내 연못에 쌓인 동전들은 봄볕을 물 밖으로 반사하고 있었다. 또한 불국사 법화전터 한 편에는 마치 성황당인 양 작은 돌멩이들로 쌓은 한두 뼘 크기의 돌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연못 속에 던져놓은 동전이나 돌탑에 하나를 보탠들 그것이 무슨 특별한 기원의 표시는 아닐지라도, 그 행위와 표시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나름의 마음속 소망의 흔적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불전함이나 공양미나 동전이나 돌탑이 모인 그곳들은 그 표시의 실재로서 누군가가 자기의 마음을 꺼내놓은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곳들에 표시한 사람들의 마음은 호주머니 속에서 고민과 번민의 손끝으로 자꾸 매만져 꼬깃꼬깃해진 상태일 거라고 여겨졌다. 그렇듯 누군가의 소망과 기원의 간절함은 그의 마음의 손끝에서 생겨난 주름의 정도에 비례하지 않을까. 그러니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의 주름’이야말로 그들이 믿는 신(神)에게는 의미 있는 진짜 표시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기원의 결과에 대해선 당장은 누구든 알 수 없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윤병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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