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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맥주생활 (26)] 편의점에서 수제 맥주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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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17일 17:00 프린트하기

H가 들이켜 온 맥주의 역사를 회상해본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재수 시절. 학원 동기들 사이에서 하이트 2만cc 마시는 애로 통했다. 마셔도 마셔도 안 취했고 화장실만 다녀오면 500cc 원샷 따윈 문제 없던 음주 전성기였다. 당시 하이트는 천연암반수로 만든 맥주로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서며 H와 마찬가지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신입생 때는 학보사 선배들과 중국집에서 싸구려 빼갈로 시작해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결국 하숙집 친구들과 합류해 밤새도록 1.9리터 페트병에 든 카스를 퍼 마셨다. 하이트를 마시면 왠지 아저씨 같고 ‘뜨는 해’인 카스가 프레시해 보이는 시절이었다.


직장 생활하면서는 올몰트비어라는 맥스를 지나 드라이피니시디가 골뱅이랑 잘 맞는다고 주장하는 데스크를 만나 진지하게 음미해보기도 했다. 어떤 맥주든 결국은 처음처럼과 섞여 맛이나 브랜드 따위는 무의미해졌지만…


가끔 카프리 병나발을 불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물을 섞지 않았다는 클라우드를 잠깐 신봉하기도 했지만 찰나의 만남이었을 뿐…

 

하이트진로 제공
하이트진로 제공

20년에 육박하는 H의 음주 역사 속에 마치 많은 종류의 맥주들을 거쳐온 것 같지만 이들은 결국 두세 개의 맥주 회사에서 내놓은 맥주 브랜드다. 80년에 이르는 한국 맥주 역사에서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삼촌, 이모 모두 같은 회사에서 브랜드만 바꿔 내놓은 맥주를 일관되게 마셔왔다.


이 땅에서 맥주가 처음 생산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1930년대 일본이 세운 조선맥주와 기린맥주가 맥주 시장을 양분했다. 조선맥주는 하이트맥주로, 기린맥주는 오비맥주로 이름은 달라졌지만 시장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1992년 진로쿠어스맥주가 설립돼 카스까지 맥주시장에 합류했다. 하지만 어둠의 시기를 거쳐 카스가 오비맥주에 인수되고 오비맥주는 2014년 전세계 1위 맥주 기업 앤호이저부시(AB)인베브에 팔렸다. 진로를 사들인 롯데주류가 맥주시장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한국 맥주 시장은 하이트, 오비, 롯데가 시장점유율 90% 가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역시 헬조선이라 대기업들만 판을 치는구나 하겠지만 전 세계 맥주 시장을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AB인베브 산하의 버드와이저, 버드라이트, 버드아이스, 바스, 스텔라, 벡스, 호가든, 레페, 구스아일랜드 등의 브랜드가 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다. 또 밀러쿠어스가 갖고 있는 밀러, 밀러라이트, 쿠어스 라이트, 그롤쉬, 필스너 우르켈, 페로니, 블루문 등이 26%, 코로나, 모델로, 칭타오 등 콘스텔레이션 브랜즈의 맥주들이 10%대 점유율을 차지한다(2015년 기준). 결국 대기업 맥주들이 시장의 80% 이상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브랜드가 다양해서 다행이지만 천조국도 자본 앞에 별 수 없다.

 

싱글핀에일웍스 제공
싱글핀에일웍스 제공

일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아사히가 39%로 7년 연속 선두를 기록하고 있고 기린이 32.4%, 산토리가 15.7%, 삿포로가 12.0% 등으로 10개 맥주 중 9개는 대기업의 밍밍한 페일라거 맥주다.


여기에 맥주 공룡은 나날이 몸집을 불리고 있다. 벨기에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맥주 회사인 AB인베브는 지난해 사브 밀러와 합병해 세계 맥주 시장 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게 됐다.


언제까지 이런 맥주만 마실 것인가…. 한숨이 나오지만 다행히 맥주 세상은 변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대기업 맥주에 대한 반동으로 전세계적으로 소규모 양조장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혁명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1978년 10월 4일 홈브루잉 금지법이 풀리면서 다양한 맥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것이 전면 허용되면서 자유롭게 맥주 양조를 하고 재능을 발견한 사람들은 차고에 양조장을 차리고(미국에서는 어떤 사업이든 차고에서 시작해야 하나보다. 나도 차고만 있었다면…) 판매를 시작했다. 


1930년대 금주법으로 인해 맥주 양조장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운동이라고 불릴 만큼 활발한 맥주 양조가 시작돼 이제는 5005개의 맥주 양조장이 전역에 자리 잡았고 크래프트 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전체 맥주 시장의 15%에 육박하게 됐다.


오랜 맥주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과 홉이 많이 생산되는 호주, 뉴질랜드 등 신대륙에서도 양조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크래프트비어닷컴 제공
크래프트비어닷컴 제공

한국에서도 움직임이 감지된다. 지난 2014년 소규모 양조장의 맥주 외부 유통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크래프트 맥주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 맥주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2013년 61개까지 줄어들었던 맥주 제조 면허 수가 지난해 말 80개를 넘어섰다.


크래프트 맥주 펍은 물론이고 일반 식당에서도 다양한 맥주를 접할 수 있게 됐고 연말부터는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국산 크래프트 맥주를 만날 수 있게 된다.


한의사, 컨설턴트, 디자이너 등 여러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맥주 업계로 들어오면서 맥주 맛은 물론이고 문화 자체가 풍성해지고 있다. 밤새도록 마실 맥주를 제공해주는 에어비앤비, 쉐프의 음식과 크래프트 맥주를 배달해주는 서비스, 생맥주를 즉석에서 캔에 담아주는 펍 등 다양하다.


우리는 80년만에 취향에 따라 맥주를 골라 마실 수 있게 된 행운아들이다.


맥주 독립 만세!

 


<’1일 1맥’ 추천 맥주>
 

뉴벨지움브루잉 제공
뉴벨지움브루잉 제공

이름 : 뉴벨지움 팻타이어 앰버에일(New Belgium Fat Tire Amber Ale)
도수 : 5.2%


전기공 출신 홈브루어가 차린 미국 콜로라도의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 오렌지, 살구와 같은 홉의 신선한 향과 함께 비스켓, 토스트의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벨기에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 창업자 자전거의 애칭이 팻타이어였다고. 언제 마셔도 부담 없이 맛있는 맥주.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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