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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 기자의 온도차 ⑧] 트럼프의 칼바람 못 피한 美 과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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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18일 09:00 프린트하기

 

3월 16일(현지시간) 오전 7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예산안의 공식 명칭은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예산 청사진(America First, A Budget Blueprint to Make America Great Again)’입니다.


62페이지 분량의 예산안 첫 장에 박힌 긴 제목 중에서도 ‘아메리카 퍼스트’만 굵은 글씨로 돼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적 시각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예산안의 골자는 국방과 국토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이들 분야를 전폭 지원하는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해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은 한정된 만큼 이들 분야의 예산 증가는 다른 분야의 예산 삭감을 뜻합니다.


과학기술 분야도 쪼그라들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거부감을 표시해온 환경 분야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과학 분야에서는 승자가 거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17일(현지시간) 발표한 2018년 예산안 표지. - PDF 캡처 제공
트럼프 정부가 17일(현지시간) 발표한 2018년 예산안 표지. 제목에서
부터 ‘미국 우선주의’ 시각이 확연이 드러난다. - PDF 파일 캡처

● 국립보건원(NIH)-사실상 가장 큰 타격


예산 규모와 세계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력 측면에서는 국립보건원(NIH)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입니다. NIH에는 전년 대비 예산의 약 17%가 깎인 259억 달러(약 29조 3000억 원)가 배정됐습니다.

 

예산 삭감에 이어 백악관은 NIH 산하 27개 연구소의 조직 개편도 요구했습니다. 규모가 가장 작은 포가티국제센터(forgaty International Center)는 폐지를 명시했습니다. 멀버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NIH가 기관 본연의 기능 이외의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NIH 내부는 예산 삭감에 따라 술렁대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암을 포함한 바이오메디컬 연구가 축소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학연구연합회(UMR·United for Medical Research) 회장인 리즈벳 보로우 박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NIH의 예산 삭감은 의학 연구와 관련 분야의 취업,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급작스럽고 현명하지 못한 NIH의 예산 삭감안을 통과시키지 말아 줄 것을 의회에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보호청(EPA)-31% 삭감 칼바람


환경보호청(EPA)은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 칼바람을 가장 심하게 맞은 기관입니다. 백악관은 전년 대비 EPA 예산의 31%를 축소했습니다. EPA 연구개발국이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은 4억8300만 달러(약 5465억 원)에서 2억5000만 달러(약 2830억 원)로 반토막 나게 생겼습니다.

 
이에 따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과 건물을 지원하는 ‘에너지 스타(Energy Star)’ 프로그램을 포함해 50여개 이상의 에너지 관련 프로그램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2015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클린 파워 플랜(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한 계획)’에 지원되는 예산도 끊길 운명입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국제 연구 협력 프로그램들도 줄줄이 취소될 전망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백악관은 EPA 직원 1만5000여 명 가운데 3200명의 정리 해고도 요구했습니다. EPA의 한 생물학자는 ‘네이처’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항상 부르짖지만 EPA에서는 3000명을 자르려고 한다”고 비꼬았습니다.

 

●국립해양대기청(NOAA)-위성 프로그램은 지속


환경기상위성을 운용하며 기후변화 연구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히는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경우는 EPA에 비해 사정이 좀 나은 편입니다. 그간 미국 내 33개 대학에 해양 관련 연구비로 지원되던 7300만 달러(약 826억 원) 규모의 프로그램이 없어진 정도입니다. 백악관은 구체적인 예산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되는 기상위성 프로그램은 계속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에너지국(DOE)-사용후핵연료 처분장 재시동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등 17개 대형 국립연구소를 산하에 두고 있는 에너지국(DOE)은 전년 대비 6% 감축안으로 정리됐습니다. 9억 달러(약 1조185억 원)에 이르는 DOE 과학국의 연구비를 없앴고, 이산화탄소 저감 기술 개발 등에 지원되던 17개 프로그램도 폐지했습니다. 대신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단됐던 사용후핵연료 직접 처분장인 유카산 처분장 건설은 다시 시동이 걸렸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20년대 목성 위성인 유로파를 탐사할 유로파 클리퍼를 개발 중이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20년대 목성 위성인 유로파를 탐사할 유
로파 클리퍼를 개발 중이다. 유로파 프로그램은 이번 예산안의 칼바람
을 피해 살아 남았다. -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1% 삭감으로 ‘선방’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191억 달러(약 21조6155억 원)로 편성돼 전년 대비 1% 삭감이라는 나름 괜찮은 예산안을 받았습니다. 이 1% 안에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진행되던 소행성 프로그램과 기후변화 관련 지구과학 연구 중단 등이 포함됐습니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 탐사는 중단 없이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동안에는 NASA가 지구 관련 연구보다는 심우주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현재 NASA는 2020년대에 유로파를 탐사할 ‘유로파 클리퍼’를 발사할 계획입니다. 유로파 클리퍼 개발은 제트추진연구소(JPL)와 존스홉킨스대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립과학재단(NSF)-언급조차 안 돼


국립과학재단(NSF)은 이번 예산안의 어느 곳에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NSF는 한해 75억 달러(약 8조4863억 원)에 이르는 연구개발비를 움직이는 공룡 기관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NSF의 예산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던 만큼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NSF 내부는 불안한 분위기입니다.


특히 NSF는 올해 말 본부 이전을 계획하고 있어 더욱 술렁이는 눈치입니다. 현재 위치한 워싱턴 인근의 볼스턴에서 워싱턴 남쪽 알렉산드리아에 위치한 아이젠하워 애비뉴로 이동합니다. 이에 따라 NSF 직원 2000명 중 17%가량은 출퇴근 문제 등으로 NSF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내부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향후 NSF의 예산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의회 통과 여부 변수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안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6개월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단 상하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토대로 예산결의안에 이어 단일예산안을 만들고, 이를 4월 15일까지 통과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예산안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후 각 부문의 예산안을 확정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0월 1일 전날인 9월 30일까지 완료돼야 합니다.


이번 예산안이 의회를 무사히 통과할지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과학기술 분야  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복지, 도시주택개발 등 민생 분야에서도 줄줄이 예산이 삭감돼 공화당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NASA의 한 전직 과학자는 ‘네이처’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불평하기 보다는 일어나야만 하는 일(예산안 수정과 같은)에 힘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앞으로 한달 남짓, 미국 과학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지켜볼 일입니다.  

 


캘리포니아 주 얼바인=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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