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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양자컴퓨터, 우주방사선 때문에 지하골방 신세 전락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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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양자컴퓨터, 우주방사선 때문에 지하골방 신세 전락 운명

2020.08.28 09:23
양자컴퓨터가 자연 방사선에 영향을 받으면 성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퍼시픽노스웨스트국가연구소 제공
양자컴퓨터가 자연 방사선에 영향을 받으면 성능이 제한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퍼시픽노스웨스트국가연구소 제공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보다 수십만 배 빠르게 난해한 문제를 풀어낼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컴퓨터인 양자컴퓨터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우주에서 날아오거나 주변 물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자연방사선이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안티 벱살라이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후연구원과 존 오렐 미국 퍼시픽노스웨스트국가연구소(PNNL) 연구원 공동연구팀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선이나 콘크리트에서 나오는 방사선처럼 자연에 기본적으로 퍼져 있는 수준의 방사선량으로도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이달 2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양자컴퓨터는 정보의 기본 단위로 ‘양자비트(큐비트)’를 쓴다. 디지털 컴퓨터는 0과 1을 구분한 값을 정보 기본 단위인 비트로 활용한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의 ‘중첩’ 현상을 활용해 0과 1 두 정보를 가진 채 정보를 처리한다. 동시에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병렬연산이 가능하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오늘날 컴퓨터보다 수십만 배 빠르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성능은 큐비트를 만드는 양자중첩 현상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가 좌우한다. 양자중첩은 자기장으로 가둔 이온이나 초전도체 등을 이용해 구현한다. 중첩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 깨지기 때문에 조금만 외부환경이 바뀌어도 쉽게 사라진다. 큐비트를 오래 유지하기 쉽지 않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는 것으로 평가받는 초전도체 방식의 큐비트도 유지시간이 현재 약 200마이크로초(100만 분의 1초) 정도다.

 

큐비트는 자기장, 전기장, 열에너지 등 온갖 환경에 반응한다. 전문가들은 방사선도 충분히 큐비트를 방해하는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자기장과 온도를 조절해 큐비트의 유지시간을 늘려 오면서 방사선이 미칠 잠재적 위험은 커져갔다. 데이비드 김 MIT 링컨연구소 기술원은 “지난 5년간 초전도 큐비트의 품질은 계속 좋아져 왔다”며 “이제는 방사선 영향이 5년 전보다 약 10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방사선이 큐비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구리 호일로 방사선 유출기를 만들었다. 구리는 고출력 중성자에 노출되면 불안정한 동위 원소인 구리-64로 바뀌어 방사능을 배출한다. 연구팀은 구리 호일이 배출하는 방사능을 실제 어디서나 감지할 수 있는 배경 방사능 수준으로 조절한 후 초전도 큐비트에 이를 노출시켰다.

 

그 결과 초전도 큐비트는 실제로 약한 방사능에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방사능 정도에 따른 큐비트 중첩 유지시간을 분석해 자연 수준의 방사능에서는 큐비트가 최대 4밀리초까지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자컴퓨터를 아무 곳에나 놓아두면 성능이 제한되는 셈이다.

 

방사선을 차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외부 방사선이 닿지 않는 지하에 넣어두거나 납과 같은 방사선 차폐 물질을 두르는 것이다. 연구팀은 방사선 차폐를 위해 큐비트 주변을 2t의 납벽으로 둘러싼 후 큐비트 성능을 다시 분석했다. 그 결과 차폐를 잘 이룰수록 큐비트의 유지시간을 늘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렐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배경 수준의 방사선이 초전도 큐비트의 성능을 저하시킨다는 것을 측정을 통해 처음으로 분명히 보여줬다”며 “양자 컴퓨터를 설계할 때 오랫동안 기대했던 성능을 얻기 위해서는 방사선 차폐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자연방사선을 99% 차단하는 PNNL의 지하 연구시설이다. 양자컴퓨터가 성능을 높이기 위해선 지하로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PNNL 제공
자연방사선을 99% 차단하는 PNNL의 지하 연구시설이다. 양자컴퓨터가 성능을 높이기 위해선 지하로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PNNL 제공

이번 연구는 양자컴퓨터가 성능을 높이기 위해선 지하로 들어가거나 거대한 납 성 속에 갇혀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국립핵물리연구소와 독일 칼스루헤공대 등 유럽 공동연구팀은 올해 5월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지하에서 양자컴퓨터를 가동했을 때 큐비트의 일관성이 늘어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최근 큐비트의 성능 개선 양상으로 볼 때 수년 내로 자연방사선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에 참여한 윌리엄 올리버 MIT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큐비트 중첩 문제는 양파와 같다”며 “우리는 지난 20년간 한 층씩을 벗겨 내고 있는데 이번에 방사선 배경 복사라는 층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을 구축하려면 지상 방사선의 영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며 “큐비트를 방사선 입자에 덜 민감하도록 설계하거나 방사선 덫을 설계해 큐비트에서 방사선을 멀리 떨어트려 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이 양자컴퓨터 연구자들에게는 고민거리를 안겼지만 다른 연구에는 오히려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연구에 참여한 브렌트 반데벤더 PNNL 연구원은 “큐비트처럼 양자 중첩을 일으키는 물질이 환상적인 방사선 검출기인 것이 밝혀진 것”이라며 “표준 입자 물리학 연구에서 오랫동안 검증을 위해 노력해 온 암흑물질 연구에 역으로 큐비트를 적용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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