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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용기의 진짜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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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용기의 진짜 정체

2020.09.26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에 읽은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계속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Brave doesn't mean you're not scared, It means you go on even though you're scared.  And you're doing that).” 가만히 지금까지 중 가장 용기있는 선택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이다. 당시 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내게로 와 울면서 다른 학급 친구 누구누구로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다양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직접 들으니 충격이 컸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물으니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괴롭힘을 당해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또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면 이후에 고자질했다며 보복당할까봐 등의 이유로 조용히 있었던 것이었다. 


일단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한 끝에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담임 교사가 학생들의 일기장을 매일 검사했으므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니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 역시 그 아이들에게 찍혀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해온 아이들은 그 두려움이 더더욱 컸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푸라기를 잡는 듯한 간절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폭력을 고발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담임교사가 별로 교사다운 사람이 아니었어서 괜히 고발해서 귀찮은 일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고발한 아이들이나 괴롭힌 아이들이나 똑같다는 식의 발언과 대응을 했다. 피해자 신변 보호 같은 것도 없었어서 누가 주도해서 고발했는지도 다 알려졌고 당연히 보복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들은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위험이 존재하고 심히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의 선택이 옳다는 굳은 신념을 갖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등 뻔히 힘들 것임이 예상되어도 가야만 하는 길이 있음을 배웠다. 매우 두려웠고 후폭풍도 컸지만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떳떳할 수 있었다. 고로 적어도 나는 후회도 없었다. 


흔히 ‘용감한 사람’이라고 하면 두려움이나 우유부단함 없이 과감한 일들을 척척 진행하는 수퍼맨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진짜 용기란 이토록 미약한 내가 나의 한계와 다가올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벌벌 떠는 손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클렘슨대의 심리학자 신시아 퓨리 등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용기에는 겁 없이 부딫히는 용맹함 외에도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용기있는 행동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신체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필요한 행동을 하거나(신체적 용기),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거나(도덕적 용기), 혹은 완전 생소한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거나(정신적 용기) 하는 다양한 경험들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나서 위의 용기있는 행동을 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질문들은 용기와 관련되어 보이는 다양한 덕목들에 관한 것이었다. 예컨대 용기를 내는 과정에서 각종 위협이나 도전, 어려움, 고통에 의해 위축된 적이 있는지(용감함), 그 용기있는 행동을 했을 때 하기로 마음 먹은 행동을 끝까지 관철해냈는지(끈기), 당시 자신을 속이거나 숨기지 않고 진실된 마음으로 행동했는지(진실성), 사람들을 모아 조직하는 등 리더의 역할을 했는지(리더십), 용기있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왔는지(친절),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는 않았는지(겸손), 자신의 용감한 행동으로 인해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는지(희망), 그 일을 하며 충만한 마음과 살아있음을 느꼈는지(활력) 등에 대해 물었다. 


연구자들은 총 24개의 서로 다른 덕목들에 대해 질문하고 많은 이들이 용기와 관련해서 공통적으로 경험했다고 말한 덕목 다섯개를 추려냈다. 희망, 친절, 끈기, 진실성, 용감함, 활력이 용기와 관련해 가장 자주 등장한 주요 덕목들이었다. 


용기는 단순한 ‘겁 없음’보다 훨씬 큰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 싸움 끝에 언젠가는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 싸우는 과정에서 서로를 신경 쓰고 보살피는 친절, 두렵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끈기, 남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 등의 이유가 아닌 순수히 자신의 신념을 따라 행동하는 진실성, 위험과 협박에 괴로워할지언정 굴하지 않는 용감함, 힘들지만 올바른 행동을 하며 에너지가 넘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활력의 여러 덕목들이 버무려진 상위 덕목이 용기의 진짜 정체라는 것이다. 


하나도 두렵지 않고 하나도 갈팡질팡하지 않는 상태보다 매우 두렵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실수하며 후퇴하는 일이 있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상태가 훨씬 용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쩌면 하루하루 고민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용기있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고려하면 살아가는 사람들 중 용감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 같이 불확실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 또한 매우 용감한 행동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들이 모두  나의 무력함이 아닌 내 용기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참고자료 

Pury, C. L., & Kowalski, R. M. (2007). Human strengths, courageous actions, and general and personal courage.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2, 120-128.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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