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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의 벽, 어떻게 허무나](중) '쉬운 용어'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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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의 벽, 어떻게 허무나](중) '쉬운 용어'의 위대함

2020.12.10 17:27

앤서니 파우치, '쉬운 용어'로 코로나19 위기에 대중 신뢰 얻어

대통령 6명 바뀌는 동안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미 연방정부, '쉬운 글쓰기 법안(Plain Writing Act)' 제정

 

위키피디아 제공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환영하는 장면. 위키피디아 제공

‘앤서니 파우치는 전문가의 정석을 보여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에 대해 전염병 최고 경보 단계인 ‘팬데믹(대유행)’을 선언한 지 2주쯤 지난 3월 26일,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이 같은 제목으로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다뤘다.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 NBA 스타 유튜브에 등장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파우치 소장에 대해 “그는 겸손함과 인류애를 가졌고, 불확실성과 실패를 인정하며, 과학을 정치적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그는 코로나19라는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유익하면서도 쉬운 용어(plain language)를 사용해 과학 전문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미디어의 발달, 정보량의 증가, 경제구조의 변화 등으로 전문가의 정의도 바뀌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 훈련을 받고 관련 지식을 쌓아 학위와 같은 자격증을 얻으면 전문가로 인정받던 시기도 있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1950년대 과학자와 의사는 실험복을 걸치는 것만으로 전문가의 자격을 얻었다”며 “지금은 정보 전달과 같은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졌고, 그런 점에서 파우치 소장은 과학자로서 신뢰를 쌓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썼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대표적인 사례로 하이드로클로로퀸에 대한 파우치 소장의 설명을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로클로로퀸이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며 트위터에 언급했고, 3월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뉴스 브리핑에서는 이에 대한 파우치 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한 질문이 쏟아졌다. 

 

당시 그는 “대통령이 어떤 언급을 했는지 완벽히 알지 못한다”고 말문을 떼면서 “그 약에 대한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약이 안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나 같은 과학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설명 방식에 대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파우치 소장은) 과학자와 일반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잣대로 과학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과학을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신 설명의 도구로 사용했고, 그 용어는 쉽고 일반적”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3월 11일자에 “파우치 소장은 청중을 깎아내리지 않고 과학을 설명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전했다. 그의 이런 능력은 최장수 NIAID 소장으로 이어졌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던 1984년 NIAID 소장에 처음 임명된 이후 대통령 6명을 거치는 동안 그는 계속 자리를 지켰다. 그는 최근 조 바이든 당선자의 유임 요청도 수락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인 도나 섈레일라는 뉴욕타임스에 “세계적 수준의 과학자들은 많지만 파우치 소장은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소통 능력과 성실함”이라고 말했다. 

 

파우치 소장은 2015년 의회전문 TV인 C-스팬과의 인터뷰에서 “대중은 특히 위기 상황에서 정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의료 정보를 필요로 한다”며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면서 공공 서비스의 가치를 배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미국프로농구(NBA)의 빅스타인 스테픈 커리와 함께 NBA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와 관련한 질의응답을 진행하며 코로나19와 독감의 차이를 쉽게 설명했다. 이 동영상은 10일 기준 48만 회 이상 재생됐다. 

 

스테판 커리 유튜브 캡처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아래)이 미국프로농구(NBA) 빅스타인 스테픈 커리와 유튜브에 출연해 코로나19와 관련된 대중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스테픈 커리 유튜브 캡처

●美, 2010년 ‘쉬운 글쓰기 법안(Plain Writing Act)’ 통과

 

대중에게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려는 움직임은 미 정부 차원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0년 10월 1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정부 문서에는 쉬운 용어를 써야 한다는 규정이 담긴 ‘쉬운 글쓰기 법안(Plain Writing Act)’에 서명하며 쉬운 용어 표기를 법으로 규정했다. 대중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 문서는 쉬운 용어로 표기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문서는 쉬운 용어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법안의 배경과 내용을 공개한 홈페이지(plainlanguage.gov)에는 과학자들에게 쉬운 용어 사용을 당부하고 있다. 미 의회에 제출되는 법안의 약 50%는 줄기세포, 지구온난화와 같은 과학기술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고, 이에 따라 법안 심사 시 DNA를 포함한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만큼 과학적 내용을 충분히 쉬운 용어로 설명해야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홈페이지 캡처
미 연방정부는 2010년 ‘쉬운 글쓰기 법안(Plain Writing Act)’을 통과시켜 모든 정부 문서는 쉬운 용어로 작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으로 만들었다. 홈페이지 캡처

홈페이지는 릴리 화이트만의 기사를 인용해 “전문용어로 전달되는 정보보다 쉬운 용어로 전달될 때 과학적 독해력이 향상된다”고 강조했다. 화이트만은 워싱턴포스트와 미 연방정부기관 전문지인 페더럴 타임스 기고가이자 국립과학재단(NSF) 소속 저술가로 활동했다. 


화이트만은 기사에서 의학학술지에만 실렸을 때보다 뉴욕타임스에 보도됐을 때 인용횟수가 73%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또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발행하는 의학 학술지인 ‘클리블랜드 임상의학저널’이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문용어로 영향력이 떨어졌지만, 전문용어가 가득하고 장황한 내용을 쉬운 용어와 이해하기 쉬운 그래픽, 간결한 기사 요약 등으로 바꾸면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의학학술지 중 하나로 바뀌었다고 썼다. 


미 연방 정부는 이 법안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정부 공무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매년 ‘쉬운 용어상(Plain Language Award)’ 수상자도 선정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1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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