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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이제는 방역 패러다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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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이제는 방역 패러다임 바꿔야 한다

2020.12.23 10:57
‘추적’에서 ‘스크린’으로

 

 지난 1일 오후 부산 연제구 한 주차장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이 대구 동산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1일 오후 부산 연제구 한 주차장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이 대구 동산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꺼져간다고 착각했던 코로나19의 불길이 무섭게 되살아나고 있다. 화려했던 지난 3월의 'K방역'의 성공 신화에 취해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라는 인구 10만 명 당 감염자 46.3명, 사망자 0.8명은 허울 좋은 통계일 뿐이고, 국민 안전을 위해 백신의 안전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여당의 주장은 부끄럽고 황당한 거짓 궤변이다. 실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병상은 동이 났고, 의료진은 지쳐버렸고, 숨은 감염자가 늘어나고, 백신도 구하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도 알량한 경제논리에 무력화됐고 방역 전문가들의 절박한 외침도 외면당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추적’에서 ‘스크린’으로

 

감염 경로가 제한적이었던 지난 2월의 1차 확산에서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역전사-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진단키트를 사용한 ‘진단·추적’이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정부가 1200억 원이나 쏟아 부으면서 전 세계에 자랑해왔던 ‘K방역’의 성공은 사실 진단키트·신용카드(교통카드)·CCTV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물론 개인정보의 무차별적인 침해를 묵묵히 견뎌준 국민들의 인내심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감염 경로의 추적이 불가능한 ‘깜깜이 감염’과 감염 사실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숨은 감염’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는 감염 경로를 따라가는 ‘추적’보다 지역과 집단의 감염 상태를 확인하는 ‘스크린’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정부가 방역 자원을 집중해야 할 지역과 집단을 가려내는 일에 더 많은 예산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역시 세계 최초로 개발해놓은 항원과 항체 ‘신속’ 진단키트를 적극 활용하면 된다. 항원 키트와 항체 키트의 정확도가 80% 수준으로 PCR 키트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감염자를 놓쳐버리는 ‘위음성’도 나타나고, 엉뚱한 사람을 감염자로 진단하는 ‘위양성’도 나타난다. 그래서 신속 진단키트는 감염 사실을 최종 판단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신속 진단키트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속 진단키트는 값이 매우 싸다. 마스크를 구입하는 정도의 값이면 신속 진단키트를 사용할 수 있다. 즉석에서 진단 결과를 알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장점이 있다. 사용법도 개인이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신속 진단키트는 선별진료소에서 비용도 부담스럽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훈련된 인력과 장비가 필요한 PCR 검사의 대상자를 가려내는 ‘예비검사’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PCR검사의 양성율은 고작해야 3%에 지나지 않는다. 97% 이상은 사실상 불필요한 검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저렴하고 간편한 신속 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만 PCR 검사를 실시하면 사회적 비용과 검사 인력의 피로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신속 진단키트의 오류로 감염자를 놓쳐버리는 위험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신속 진단키트로 음성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다시 한 번 신속 진단키트 검사를 반복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위음성율이 20%인 신속 진단 검사에서 2회 연속 ‘위음성’ 판정을 받을 확률은 4%이하로 줄어들어 버린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마스크 한 장 값에 해당하는 비용과 잠깐의 불편을 감수하면 된다.  선별 검사소에서 피로와 함께 추위에 떨고 있는 검사 인력의 수고를 크게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되살려야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날 응시생이 시험장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날 응시생이 시험장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뿌리 깊은 불신을 걷어내는 노력도 중요하다. ‘국가고시’를 포기해버린 의대 졸업생들에게 정부가 선제적으로 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의대 졸업생들의 ‘무조건적 항복’ 요구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일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3000여 명의 의대 졸업생을 포기해버리면 우리나라 전체의 의료 시스템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다른 분야와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도 무의미하다. 의대 졸업생의 국가고시 포기는 본래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서 난데없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공의대 설립을 밀어붙였던 정부의 졸속 행정이 만들어낸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코로나19의 2차 확산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의료계를 불신의 늪에 밀어 넣어버린 책임은 온전하게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공공의료 개혁’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이유를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 대선 공약이었던 의료의 공공성 확보는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8월 느닷없이 들고 나온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공공의료가 부실해진 원인에 대한 인식도 천차만별이고, 공공의대 졸업생에게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문제도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19의 엄중한 현실을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공공의대 설립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책적 실수에 대한 정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무거운 책임을 묻는 조치가 필요하다. 방역정책과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수준 낮은 비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백신에 대한 정부·여당의 어설픈 거짓 변명도 도를 넘어선 것이다. ‘국내 확진자가 100명 정도라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지난 20일 언론 발언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정부가 의료계와의 대립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공공의대 설립을 밀어붙였던 것도 코로나 사태가 끝났다는 황당한 오판 때문이었다는 뜻이다.


정부가 스스로 정해놓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을 제멋대로 무너뜨리고, 어설픈 ‘소비쿠폰’으로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든 책임도 무겁다. 정부가 앞장서서 법과 기준을 무시하는 행태는 촛불 민심이 갈망하던 법치와는 거리가 아주 먼 부끄러운 선택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어설픈 시도가 오히려 경제와 방역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다. 어떠한 전문성도 기대할 수 없는 장차관의 어설픈 발표문 대독으로는 경제와 방역 중 어느 것도 살릴 수 없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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