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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로 항원성 바뀌면 백신도 소용 없어”…변이 바이러스의 실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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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로 항원성 바뀌면 백신도 소용 없어”…변이 바이러스의 실체를 찾아서

2021.02.19 08:00

국내 ABL3 연구시설, 고려대 의대 생물안전센터

박만성 교수 “돌연변이가 바이러스 항원성 바꿔”

1년간 바이러스 유전체 분석만 수천 건

 

기자가 직접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동물이용 생물안전 3등급(ABL3) 연구시설 내에서 실험을 시뮬레이션해봤다. 실험 장치는 바이러스의 공기 중 전파를 시험하는 것으로 ABL3 내부에도 동일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현경 제공
기자가 직접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동물이용 생물안전 3등급(ABL3) 연구시설 내 실험을 시뮬레이션했다. 실험 장치는 바이러스의 공기 중 전파를 시험하는 것으로 ABL3 내부에도 동일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현경 제공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의대 생물안전센터. ‘ABL3(동물이용 생물안전3등급)’이라는 글자와 함께 ‘통제구역’이라는 문패가 붙은 유리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등 고위험 바이러스를 다루는 생물안전 3등급(BL3)의 연구시설이다. 

 

2014년 질병관리청에서 BL3시설로 허가받은 뒤 2018년에는 조건이 더 까다로운 동물실험까지 할 수 있는 ABL3으로 인정됐다. 국내 대학에서 BL3 허가를 취득한 곳은 지난해 5월 기준 총 11곳, ABL3은 고려대를 포함해 건국대, 전북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려대 의대 생물안전센터 입구. 동물실험까지 할 수 있는 생물안전 3등급(ABL3) 연구시설로 허가 받아 고위험 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다. 국내 대학에 ABL3 시설을 갖춘 곳은 극소수다. 이현경 제공
고려대 의대 생물안전센터 입구. 동물실험까지 할 수 있는 생물안전 3등급(ABL3) 연구시설로 허가 받아 고위험 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다. 국내 대학에 ABL3 시설을 갖춘 곳은 극소수다. 이현경 제공
○ 음압병동처럼 레벨D 방호복 갖춰야 실험할 수 있는 ABL3

“ABL3 내부는 음압시설로 구축돼 일반 실험실보다 압력이 낮습니다. 바깥 공기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3차 필터로 걸러진 공기가 내부에서 순환할 수 있는 특수 공조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요.”


김기순 고려대 미생물학교실 바이러스병연구소 교수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연구시설 내부는 폐쇄회로(CC)TV를 달아 원격으로 관리한다. 실험 중인 연구원 2명이 있는 화면에는 ‘-14Pa(파스칼)’이란 수치가 떴다. 음압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ABL3 연구시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레벨D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 김 교수의 도움을 받아 평소 생물안전센터 연구원들이 입는 방호복을 착용했다. 그는 지난해 1월 고려대에 부임하기 직전까지 30년간 국립보건연구원 바이러스질환과장으로 근무한 베테랑 연구자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 국내 호흡기 감염병 사태를 모두 겪으며 연구원에서 ABL3 연구시설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양쪽 발에 방진 덧신부터 신고, 그 위로 머리부터 발목까지 이어진 전신 보호복을 입었다. 손에는 장갑을 두 겹 끼고, 손목에 테이프를 칭칭 감아 장갑과 전신 보호복 사이의 틈도 막았다. 머리 전체를 덮는 후드를 쓰고, 허리에 2~3kg의 전동식 호흡장치(PAPR)까지 차니 그야말로 중무장이다. 끙끙대며 방호복을 갖춰 입는 데만 5분쯤 걸렸다. 전동식 호흡장치를 켜자 후드 안에 산소가 공급되면서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김 교수는 “방호복은 잘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벗는 게 더 중요하다”며 “장갑이나 보호복에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장갑이든 보호복이든 뒤집어서 벗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추적해 진화 과정에 따라 항원성을 나타낸 항원성 변이지도. 이를 이용하면 백신의 효능을 예상하기 용이하다. 박만성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추적해 진화 과정에 따라 항원성을 나타낸 ‘항원성 변이지도’. 이를 이용하면 백신의 효능 예상이 용이하다. 박만성 제공

 

○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체만 수 천 건 분석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이후 1년간 이곳에서는 국내 코로나19 환자의 검체에서 분리한 바이러스 3000여 주의 유전체가 분석됐다. 센터장인 박만성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여서 끊임없이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며 “유전체 분석을 통해 어디에 변이가 일어났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해야 백신의 유효성도 빨리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8일에는 국가병원체자원은행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변이 바이러스를 분양받아 왔다. 3중 포장 용기에 담긴 배양액은 1.8mL, 이 중 바이러스는 100~200μL(마이크로리터·1μL는 100만 분의 1L)다. 이 정도면 바이러스가 100만 주 이상 들어있다. 바이러스가 숙주 없이도 살아있도록 영하 196도 극저온 질소 탱크에서 냉동 보관한다.  

 

박 교수는 유전체를 분석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어떻게 진화하는지 ‘진화 지도’를 그리고 있다. 바이러스의 항원성을 추적해 그래프처럼 나타낸 ‘항원성 변이지도’이다. 박 교수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바이러스의 항원성이 달라지고, 이는 백신의 효능에 직결된다”며 “기존 바이러스와 변이 바이러스의 항원성 차이가 4 이상 벌어지면 백신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박 교수팀의 분석 결과 아직은 항원성 차이가 2.24 수준이어서 백신의 작동 범위 안에 있다. 문제는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 예방 효과가 10% 수준이어서 사실상 백신의 가치가 없다는 시험결과도 나왔다.

 

박 교수는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는 항원성 차이가 4 이상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조만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항원성 변이지도를 완성해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효능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의 유전체 분석은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과 거리가 먼 기초연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감염병 대응을 위한 핵심 데이터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17일(현지시간) 변이 바이러스 추적을 위해 유전체 분석에 2억 달러(약 2213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박 교수는 “감염병 바이러스 상시 감시, 백신과 치료제, 진단키트 개발 등은 유전체 분석 기술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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