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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꿈의 에너지' 블랙홀 발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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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꿈의 에너지' 블랙홀 발전 가능할까

2021.03.27 16:03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구와 태양 사이에 반사판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나, 지구 위에 인공 태양을 만들어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연구도 모두 과학자들의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여기 SF 속 이야기보다 더 거짓말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서부터 우리가 사용할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 연구자들이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는 1969년 블랙홀을 두고 이상한 이론을 제안했다. 블랙홀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후에 그의 이름을 따 ‘펜로즈 과정(Penrose process)’이라 불리게 된 이 이론을 통해, 그는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블랙홀 회전에너지를 뽑아라       

 


천체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을 머리카락이 없는 머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머리카락은 블랙홀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특징을 비유한 표현이다. 블랙홀은 질량과 각운동량, 전하 등 세 가지 물리량만을 외부에서 관측할 수 있으며 이들을 제외하면 사건지평선(Event horizon) 밖에서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헤어스타일로 구분할 수 없는 대머리처럼, 블랙홀 역시 이들 세 물리량을 제외하면 구분할 수 없다. 이렇게 블랙홀이 세 개의 물리량에 의해서만 특성이 결정된다는 정리를 ‘머리털 없음 정리(no-hair theorem)’라고 한다.


세 물리량 가운데 질량만을 갖는 블랙홀을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이라고 한다. 질량과 함께 각운동량을 가지면 커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정지해 있는 슈바르츠실트 블랙홀과 달리 커 블랙홀은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2019년 인류 최초로 그림자 관측에 성공한 초대질량블랙홀 ‘메시에(M)87*’이 커 블랙홀이다.


커 블랙홀은 회전하고 있는 만큼 구조도 더 다양하다.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은 중심부의 특이점(Singularity)과, 특이점을 둘러싼 사건지평선으로 구성된다. 반면 커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바깥쪽에는 추가로 특별한 영역이 만들어진다. 블랙홀의 회전에 따라 시공간 자체가 회전하는 에르고스피어(Ergosphere·작용권)다. 이 지역은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만큼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


펜로즈는 이렇게 빛조차 방출하지 못하는 에르고스피어에 강한 회전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경우 유입되던 물질의 일부가 회전에 따른 원심력 때문에 도로 튕겨 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까지 덤으로 방출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물질이 유입되다 두 조각으로 갈라지면 한 조각은 구심력에 의해 블랙홀 내부로 끌려들어 가지만, 나머지 조각은 원심력에 의해 유입될 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블랙홀 밖으로 튕겨나간다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선풍기에 탁구공을 던지면 원심력에 의해 밖으로 빠르게 튕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펜로즈 과정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이론을 증명하려면 실험이 필요하지만, 실제 블랙홀에서 실험하는 것은 물론, 지구 위에 소형 블랙홀을 만들어 실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블랙홀이 안된다면 초고속 회전판으로

 

펜로즈 과정이 제안된 지 2년 뒤, 옛 소련의 물리학자 야코프 젤도비치는 펜로즈 과정을 실증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제안했다. 커 블랙홀의 회전을 모사해 빠른 속도로 원통을 회전시켜 가상의 에르고스피어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여기에 특정한 각도로 빛을 쏘면 실제로 회전하는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젤도비치의 실험은 진행되지 못했다. 블랙홀의 환경을 유사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원판을 회전시키는 속도가 최소 초당 10억 회에 달해야 하지만, 이 조건을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펜로즈 과정과 젤도비치의 실험 방법은 지난해에야 처음으로 증명됐다. 다니엘 파치오 영국 글래스고대 물리 및 천문학부 교수팀은 음파와 회전하는 흡음기를 이용해 커 블랙홀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펜로즈 과정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 지난해 6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67-020-0944-3


연구팀은 음파를 흡수할수록 회전 속도가 빨라지도록 흡음기를 설계하고 그 뒤쪽에 마이크를 설치했다. 그 뒤 흡음기를 향해 음파를 발생시켰다. 그 결과 음파에 의해 흡음기가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마이크에서 측정되는 음파의 진동수와 진폭이 감소하다가 결국 신호가 사라졌다. 마치 물질이 에르고스피어에 진입하며 결국에는 블랙홀에 흡수되는 것처럼 음파도 회전 영역에 진입하며 결국에는 흡음기에 모두 흡수된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음파를 발생시키자 흡음기의 회전 속도가 더 높아졌고, 다시 마이크에서 음파가 측정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내보낸 음파보다 오히려 30% 높은 에너지가 측정됐다. 연구팀은 펜로즈 과정에서 에르고스피어로 유입된 입자에 의해 고에너지의 입자가 튕겨 나오듯이, 음파가 흡음기의 회전에 의해 에너지를 얻어 튕겨 나왔다고 설명했다.


염동한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음파를 이용해 블랙홀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실험은 블랙홀 연구에서 실제 활용되는 방법의 하나”라며 “진짜 블랙홀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수학적으로는 같은 방정식을 따르는 만큼 과학적으로는 충분한 의미가 있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얻는 과정을 실제 실험으로 증명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회전체에 에너지를 저장하고 이를 필요할 때 추출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현재 이런 방식의 에너지 저장방법을 연구하는 연구그룹도 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연구되는 블랙홀 에너지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은 펜로즈 과정 외에도 또 있다. 1975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에서 열복사가 방출된다는 ‘호킹 복사’ 이론을 발표했다. 펜로즈 과정에서는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기 위해 물질을 투입해야 하지만, 호킹 복사에 따르면 별도의 물질이 없더라도 블랙홀 내부에서는 양자요동으로 지속해서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다.


염 교수는 “펜로즈 과정은 고전역학으로, 호킹 복사는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다만 호킹 복사로 나오는 에너지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는 만큼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커 블랙홀의 에르고스피어 영역의 회전이 아닌 자기력선에 의해서도 에너지가 추출될 수 있다는 이론이 발표됐다. 미국 컬럼비아대와 칠레 아돌포이바녜스대 공동연구팀은 자기장이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면서 플라스마 입자를 블랙홀 내부와 외부 두 방향으로 가속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결과 에르고스피어에서 자기력선이 계속해서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플라스마 입자에 음의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 책임연구원은 “입자에 음의 에너지가 부여된다는 것은 반대로 양의 에너지를 가진 가상의 입자가 만들어진다는 뜻”이라며 “음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는 블랙홀 내부로, 양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는 외부로 방출되면서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D’ 1월 13일자에 발표했다. doi: 10.1103/PhysRevD.103.023014


이번 연구에 참여한 루카 코미쏘 미국 컬럼비아대 천문학과 연구원은 “수천~수만 년 뒤 인류는 태양 대신 블랙홀 주변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며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은) 기술적인 어려움이 남아있을 뿐 물리학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SF 작품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이와 유사한 에너지 추출 방법을 고안해낸 사례도 있다. 다이슨스피어(Dyson sphere)다.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SF에서 영감을 받아 태양과 같은 항성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추출하는 거대 구조물을 구상했다. 항성을 둘러싸는 원형구조물을 만들어 에너지를 얻는다는 개념이다. 2011년에는 초대질량블랙홀 주변에 다이슨스피어를 만들어 거주하는 외계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SETI) 프로젝트에서 다이슨스피어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해 인류가 활용하려면 현실적인 어려움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추출한 에너지를 지구로 옮기기엔 지구와 블랙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블랙홀의 크기가 태양계 전체보다 큰 만큼 이를 둘러싸는 구조물을 만드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이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이론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이유는 블랙홀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손 책임연구원은 “블랙홀의 사건지평선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이 만나는 아주 특별한 지점인 만큼 두 이론의 결합을 꿈꾸는 연구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라며 “블랙홀 연구를 통해 당장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과학적 발견이 이뤄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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