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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과로를 통제하지 못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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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과로를 통제하지 못했을 때

2021.04.10 12:20

 

픽사베이 제공
할일은 많고 갈길은 먼 인생사 사소한 일 하나에 에너지를 너무 크게 소모하여 균형을 잃는다면 자기 통제실패라 할 수 있다.  픽사베이 제공

얼마 전 자기통제에 관해 연구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 중독이나 과로는 자기통제 실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자기통제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람직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는 자기 조절 능력 또는 힘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꼽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과 행복'이다. 즉 그 많은 힘든 일들도 결국에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또는 적어도 크게 고통받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한다고들 말한다. 문제는 일 중독이나 과로는 이러한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보다 해를 끼치는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 자체로 ‘목표 달성을 위한 바람직하고 적절한 행동’이라는 자기통제의 정의에 위배된다. 


즉 어떠한 노력이든 ‘궁극적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이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적절한 노력이요 그렇지 않다면, 되려 목표를 해하면서까지 노력을 위한 노력을 하는 식의 주객전도가 일어난다면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그것은 곧 자기통제 실패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당연한 말인데도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따지고 보면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수많은 방황과 허무함, 번아웃 역시 노력이 목표를 해하는 주객 전도가 일어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분명 행복하려고, 아니면 최소한 힘들게 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이런 노력들이 내 삶의 가장 큰 힘겨움이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게 된다. 이런 식의 허무함은 애쓸수록 원했던 삶과 가까워지기는 커녕 더 멀어질 때 지금 자기통제에 실패하고 있다고(헛된 일을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다시 목표와 수단을 잘 조정해 보라고 쿡쿡 찔러보는 알람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무엇이든지 ‘적절한 수준’과 ‘균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을 넘어선 목표는 부작용이 더 커져서 목표를 해하기 마련이니까. 예컨대 나의 경우 미국에서 수학 과목을 수강할 때 적절한 점수로 '통과'하기만 하면 되는 시험에서 내 안의 한국인이 들고 일어나 굳이 만점을 받겠다고 아둥바둥했던 경험이 있다. 한 학기 내내 불안하고 불행했고 좋은 점수를 받고도 수학이 더 싫어졌다. 문제 하나 틀린 거 가지고 자신을 채찍질 하고 나는 역시 수학이 안 맞는다며 애꿎은 문제들을 미워했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크나큰 자기통제 실패였던 것이다. 해당 과목을 적절히 즐길 수 있고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노력했더라면 한 학기 동안 얼마든지 즐거웠을 것이다. 해당 과목에 더 많은 애착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치열함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지겨움 뿐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정말 해당 과목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과하게 애쓰는 과정과 쓸데없이 또 아둥바둥하는 나와 내 삶”이 진절머리났던 것 같다. 


수업 하나에 과하게 애쓰는 것도 손해가 이렇게 큰데 삶의 모든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까지 과한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뭐든지 열심히 잘 해보이겠다며 완벽주의적인 자세로 매달리는 경우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많을 것이며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조차 과한 에너지를 쏟아붓고 정작 중요한 건강과 행복이 하얗게 타버린다는 점에서 이는 또 얼마나 큰 인생의 낭비인 것인가? 인생은 길고 할 일은 많은데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다 나를 갈아넣으며 애쓰는 것은 시작부터 완전히 자기통제 실패인 것이다. 

 

목표에  맞는 노력과 실행을 위해서는 정확한 계기판 설정이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결국 중요한 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무엇(건강, 행복, 덕질 등)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선에서 적당한 노력을 하는 것이 되겠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목표에서든 노력의 수준이 ‘적당히’를 벗어나는 것이 곧 자기통제 실패라는 것, 따라서 부작용이 이득을 넘어서지 않는 최적의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만년 행복도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목표 설정과 실행, 조정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실패한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듀크대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 교수와 '정확한 계기판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를 나눈 적이 있다. 자동차에서 연료가 떨어지면 '비었음(Empty)', 연료가 충분할 때는 '가득참(Full)'이 뜨는 계기판처럼, 사람들도 다 자신의 삶에서 뭐가 부족하거나 적당하다고, 또는 그 이상이라고 판단하는 계기판 또는 기준들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계기판이 오작동해서 연료가 가득 차 있는데도 계속 E(비었음)라고 뜨거나 또는 바늘이 F(가득참)에서 조금만 내려가도 큰일났다며 호들갑을 떤다. 아마도 이렇게 상당수의 불행이 그렇게 잘못 설정된 계기판 또는 계기판을 오독하는 데에서 비롯될 거라는 얘기였다. 일 중독과 과로, 완벽주의 등 모든 선을 넘는 노력들 또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자동차는 연료가 충분히 있으면 문제 없이 굴러간다. 연료통이 터질것처럼 연료가 많을 필요는 없다. 또 연료가 부족하다면 굴러가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채워넣으면 될 뿐, 나는 이제 자동차도 아니라며 낙심하는 자동차는 없다. 내 계기판은 ‘적당한 수준’을 잘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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