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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관계 공격성에 지쳐가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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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관계 공격성에 지쳐가는 당신에게

2021.05.16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신체적 공격성이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는 현대사회에서는 다른 형태의 '관계 공격성'이 분출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무인도라도 가서 혼자 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 관계다. 단독 생활을 하는 동물은 개체 간의 관계로 인해 고통받는 일이 드물다. 원래 혼자 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저 원하는 먹이를 얻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고, 번식기에 짝을 찾을 수 있으면 만족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울려서 지내며 큰 이익을 누린 종이다. 그러나 이익이 있으면, 응당 비용도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은 비용이 이익을 초과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관계 공격성'을 겪을 때, 우리는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삶을 꿈꾸게 된다. 

 

같이 지내기 어려운 사람

 

반말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은근히 사람을 깔아뭉개는 동료. 분명 친근한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무례한 행동도 아니다. 정색하고 대들면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될 것 같고, 그냥 참고 넘기면 ‘호구’로 취급될 것 같은 바로 경계선에 서있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깔아뭉개고 자신을 앞으로 내세우는 전략이다. 둘만 있으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꼭 그렇게 나를 희생양 삼아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벼르고 벼르다 한마디 하면 ‘그런 뜻이 아닌데, 왜 오해하느냐? 서운하다’며 적반하장이다. ‘지금 저에게 화내시는 거에요?’라며 동네방네 억울하다고 떠들고 다닐 녀석이다. 같이 몰려다니는 녀석들도 다들 비슷한 수준이라 더 눈치가 보인다. 여론전을 펼치면, 분명 점잖은 쪽이 더 불리하다. 그러니 복잡하게 일을 벌려봐야 나만 손해다. 게다가 회사라는 곳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곳이 아니니, 시끄러워지면 둘다 좋을 일이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도 똑같이 갚아주어야 할까?

 

 

공격성은 인간의 본성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공격성의 진화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공격성은 주로 위협에 대한 반응, 즉 반응적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겪는 애매한 공격성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적개심을 드러낸다면, 당신을 우습게 여겨서가 아니다. 당신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의 동료란 협력의 대상일수도, 경쟁의 대상일수도 있다. 당신은 그에게 경쟁자로 인식되었다. 사안에 따라서는 협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리를 놓고 다투는 사이라고 믿는 것이다. 불안하고 두렵다. 바로 당신의 ‘존재’ 자체가 걱정스러운 자다. 진화 생태학적 맥락에서 보면, 그것은 능력일 수도 있고, 매력일 수도 있고, 인맥일 수도 있다. 상상 속에서 경험한, 혹은 미래에 경험할 피해에 대항하여, 필사적인 반응적 공격을 펼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은 취약한 조건의 개체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힘세고, 가진 것 많고, 사랑도 넘치게 받는 사람이라면 굳이 주변에 이런저런 편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관대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깎아내리는 그는, 아마 상황이 너무 팍팍한 것인지도 모른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 아량을 베풀 수는 없는 일이다. 반칙은 약한 자의 비대칭 전략이다. 물론 그렇다고 반칙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 관계 공격성이란 무엇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지 않은 관계 공격성 대응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해야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현대 사회에서는 신체적 공격성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언어적인 공격성도 어렵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상호 경칭이 널리 쓰이는 데다가, 조금만 심하게 말하면 언어 폭력이라고 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다들 상냥하고 나긋나긋하다. 하지만 억지로 바른말쓰기 운동을 한다고, 사람들의 본성까지 착해질수는 없다. 


공격성은 인류, 아니 영장류 전반에서 관찰되는 보편적인 본성이다. 캠페인으로 억누를 수는 없다. 다른 형태로 공격성이 분출된다. 관계 공격성이다. 원래는 약한 자들이 힘을 합쳐, 강한 자에게 대항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약한 자의 동맹이라고 해서, 억압받은 약자의 건강한 연대라고 오해하지는 말자. 


관계 공격성을 약자만 쓰라는 법은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강자의 강압적 전략’을 법, 제도, 평판 등올 금지하는 세상이다. 자칫하면 세상의 뭇매를 맞기 쉽다. 갑질로 몰리면 곤란하다. 그러니 점점 강자도 이런 비대칭적 전략을 사용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부구성원에게 악의적 평판을 전가하고, 차별이나 해고의 근거로 삼는다. 나쁜 소문을 내고, 의사 결정에서 배제하고, 모략을 꾸며 소외시킨다. 겉보기엔 친절하고 예의바른 듯 하지만, 은밀하게 한 방 먹이는 것이다. 

 

 

관계 공격성에 대처하는 방법

신체적 공격이나 언어적 공격은 이제 흔하지 않지만, 만약 당하면 해결은 오히려 쉽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다. 그러나 관계 공격성이라면 대응하기가 어렵다.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지만, 딱 부러지게 뭐라고 하기 어렵다. 차라리 대놓고 뭐라하면 항의라도 할 텐데, 혼자 끙끙 앓기만 한다.


즉각 싫다는 메시지를 직접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직장 내 갈등에 관한 교육에서는 늘 그렇게 권장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속 좁은 사람이라는 나쁜 평판이 생기기 쉽다. 아마 사람들은 전보다 더 부드럽게 말하겠지만, 아예 말을 걸지 않는 쪽을 택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질적인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①  잠시 관계를 멀리 하라. 

메아리 치지 않는 고함은 이내 사라진다. 적당한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두면, 상당수의 갈등은 저절로 사라진다. 
②  터무니없는 공격은 무시하라. 
역 앞 취객의 행패와 같은 수준의 공격이라면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당신을 비겁하다거나,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계 공격성이 진화한만큼, 사람들은 그런 공격의 진위도 제법 잘 가려낸다. 
연민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라. 
흔히 공격은 내적 불안에서 시작한다. 대개의 공격적 행동은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불안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그도 역시 가엾은 직장인이 아닌가? 오죽하면 저럴까?
④  맞서 싸울 때는 이익과 손해를 잘 판단하라. 
당신이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일단 큰 싸움이 붙으면 쌍방과실이다. 맞서 싸우는 것은 물론 가능한 옵션이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타협하는 것이 현명하다.

⑤  조직의 미래를 예상하라. 
아주 드문 일이지만 상호 공격성이 아예 조직 문화로 자리잡은 경우가 있다. 이간질과 음해, 모략이 판을 치는 조직이라면, 개인으로서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얼른 이직을 고민하라.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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