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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살아있다] 운봉산 돌무더기는 '빙하기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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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살아있다] 운봉산 돌무더기는 '빙하기의 증거'

2021.05.22 07:00
운봉산에 쌓여있는 암괴류. 암괴류는 ‘너덜’이나 ‘애추’라 불리기도 한다.
운봉산에 쌓여있는 암괴류. 암괴류는 ‘너덜’이나 ‘애추’라 불리기도 한다.

강원도 고성군의 운봉산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돌 더미가 쌓여있어 처음 보는 사람마다 감탄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돌무더기가 빙하기의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운봉산 암괴류
높은 암괴류 지대에는 아직 부서지지 않고 기둥 모양을 간직한 주상절리가 남아 있다.  이창욱 기자=changwooklee@donga.com
높은 암괴류 지대에는 아직 부서지지 않고 기둥 모양을 간직한 주상절리가 남아 있다. 고성=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

운봉산은 해발 285m의 야트막한 산이라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군부대 초입의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무지막지한 돌덩이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나옵니다. 작으면 농구공, 크면 건물 기둥만 한 돌이 마치 강이 흐르다 멈춘 듯한 모습으로 쌓여있어요. 직접 보면 잠깐 숨을 멈추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죠. 지질학자들은 이런 큰 돌을 ‘암괴’라고 부르고, 암괴가 모여있는 것을 ‘암괴류’라고 합니다. 운봉산 사면에만 4~5개의 암괴류가 있습니다.

 

이 돌들은 용암이 빠르게 식으며 만들어진 현무암이에요. 운봉산은 약 700만 년 전, 화강암을 뚫고 올라온 마그마가 만든 화산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용암이 흐른 흔적은 없어요.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되지 않고 얕은 땅속에서 그대로 식은겁니다.

 

이렇게 굳은 마그마가 ‘주상절리’가 되었습니다.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만들어지는 수직 기둥 모양의 구조입니다. 운봉산 암괴류는 주상절리가 부서지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암괴류 여기저기에서 기둥처럼 생긴 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경식 교수가 암괴류를 이루는 현무암을 가리키고 있다.
운봉산 높은 곳에서는 아직 땅에 묻혀 침식되지 않은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고성=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

기둥 모양 돌들은 암괴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발견됩니다. 산 위쪽에서 부서진 주상절리가 밑으로 내려오면서 더 작게 부서졌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산 위에는 주상절리가 온전히 묻혀있기도 합니다.


현무암 기둥이 봉처럼 생겨서일까요? 한 전설에 따르면 이 산이 금강산이 되려고 돌을 모아 봉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미 금강산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엉엉 우는 바람에 ‘운봉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운봉산 암괴류, 얼음 미끄럼틀을 타고 쌓였다
운봉산의 암괴류는 빠르게 식은 마그마가 만든 현무암 주상절리가 침식되면서 지표로 드러나는 과정을 거친다. 사진은 미국 콜로라도주의 ‘데블스 타워’. 악마의 탑이라는 뜻으로, 주상절리가 지표로 노출된 상태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마그마가 빠르게 식으면서 현무암 주상절리를 생성하고, 이를 덮고 있던 흙이 침식되면서 주상절리가 지표로 드러난다. 사진은 미국 콜로라도주의 ‘데블스 타워’. 악마의 탑이라는 뜻으로, 주상절리가 지표로 노출된 상태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운봉산의 암괴류는 주상절리가 기계적 풍화를 받아 부서지며 만들어졌습니다. 주상절리의 틈 사이에 물이 들어가서 얼면, 얼음의 부피가 커져서 틈이 벌어집니다. 날씨가 바뀌면서 물이 얼었다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 틈이 점점 커지고, 이로 인해 주상절리가 깨져서 돌덩어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기계적 풍화만으로 암괴류가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부서진 돌들이 주상절리 주변에 흩어진 게 아니라 누가 옮겨놓은 듯 한 곳에 소복이 쌓여 있습니다. 돌들이 먼 거리를 움직여 한 장소에 모인 것은 얼음 덕분입니다. 돌무더기 밑에 얼음이 얼면서 돌들이 얼음을 타고 비탈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졌어요. 마치 얼음 미끄럼틀을 타듯 말입니다. 지질학자들은 이를 ‘암석 빙하’라고 부릅니다. 운봉산에서는 암괴류가 암석 빙하의 형태로 흘렀다는 증거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증거는 암괴류를 따라 길게 나타나는 움푹 꺼진 자국입니다. 이곳은 암석 밑의 얼음이 두꺼워서 암괴가 가장 빠르게 흘렀던 자리입니다. 기후가 따뜻해지며 얼음이 녹으면 돌무더기가 내려앉으며 고랑처럼 쑥 들어간 부분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 암괴류의 아래쪽일수록 주상절리 조각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사실도 증거가 됩니다. 주상절리 조각이 얼음을 타고 내려가면서 서로 부딪혀 깨졌을 테니까요.

 

움푹 꺼진 암괴류는 빙하기 때 두껍게 얼었던 얼음이 녹아 함몰되어 만들어진다. 이광춘 제공
움푹 꺼진 암괴류는 빙하기 때 두껍게 얼었던 얼음이 녹아 함몰되어 만들어진다. 이광춘 제공

 

운봉산의 암석 빙하는 한때 이곳의 기후가 매우 추웠다는 증거입니다. 암석 빙하가 존재하려면 일 년 내내 암괴류 아래에 얼음이 얼어있어야 하거든요.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이 약 10~14℃인데, 암괴류가 만들어지던 과거 운봉산은 일 년 내내 0℃ 이하인 빙하기였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암괴류는 강원도 설악산, 대구 달성의 비슬산, 광주의 무등산 등 우리나라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실은 강원도는 물론, 한반도 전체가 빙하기 동안 지금보다 몹시 추웠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암괴류는 그저 돌무더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질학자들에게는 과거 기후의 변화를 알려주는 소중한 지형입니다.

 

운봉산을 찍은 위성 사진. 5~6개의 큰 암괴류가 형성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제공
운봉산을 찍은 위성 사진. 5~6개의 큰 암괴류가 형성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제공

※필자소개.

우경식.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5월 15일 발행, [파고캐고 지질학자!] 운봉산에 쌓인 돌무더기, 사실은 빙하기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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