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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그때로 돌아가도 후회할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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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그때로 돌아가도 후회할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2021.05.29 09: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꼬리뼈를 다쳤다. 일주일 전쯤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하필 미끄러운 플라스틱 포장재 같은 것을 밟고 빙판에서 미끄러지듯 순식간에 뒤로 넘어졌다. 손도 짚지 못한채 넘어져서 꼬리뼈로 모든 충격을 다 받아냈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뭉개다가 며칠이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찾아간 병원에서는 꼬리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 비용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하는 것 외에 딱히 방법은 없고 회복은 약 두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많고 많은 발 디딜 곳 중 왜 하필 작은 플라스틱을 밟아서 사달이 났을까. 침대 맡에 있는 창문을 닫으러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사고가 났으니 창문 닫지 말 걸, 천천히 내려올 걸, 플라스틱 포장재가 생긴 원인인 택배 주문을 하지 말걸하는 생각에 가득찼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다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이기에 자꾸 쓸데없는 가정들을 하며 한참을 괴로워했다.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사건이 일어난 후 사건의 발생순서와 원인들을 실컷 인지하고 나서 후견지명적으로 이랬다면 혹은 저랬다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며 아쉬워하는 것을 '반 사실적 가정적 사고'라고 한다. 말이 괜히 어렵지만 실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다른 버전의 결말, 주로 내 멋대로 상상한 해피 엔딩 또는 대안적 현실을 자꾸 떠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련 또는 후회라고나 할까. 이런 가정적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같은 불행한 일을 겪어도 더 불만족스러움과 후회, 충격, 고통 등을 오래 느낀다는 연구들이 다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특히 아주 작은 차이로 결과가 갈린 경우, 이러한 가정적 사고들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예컨대 작은 점수 차이로 중요한 시합에서 지거나 간발의 차이로 비행기를 놓치는 등 상황이나 나의 행동이 조금만 달랐어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들이 발생하면 이런 사고로 이어진다. 같은 나쁜 일도 아슬아슬하게, 아쉽게 겪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더 억울함과 후회 등이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말 아쉽게 놓쳤어?


진짜 간발의 차이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실수나 노력이 아주 조금 부족해서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결과가 크게 갈렸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아슬아슬하지 않게 놓친 일들에 대해서도 가정적 사고를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때 그 사람 말고 저 사람을 사귀었더라면, 20년 전에 모 주식을, 뫄뫄 코인을 사뒀더라면하는 생각이 그런 예다.  당시에는 전혀 생각도 없었고 설령 시도했다고 해도 얼마나 오래 유지했을지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가정하며 강한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들이다. 


하지만 이는 결과를 전부 다 알고 난 지금에서야 하는 생각들일뿐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당시 상태로 돌아가면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러번 과거로 돌아가도 현재 아쉬움의 대상이 되는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쉽게 놓쳤다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즉 하나도 아쉬울법하지 않은 일을 괜히 아쉽다고 생각하며 고통을 늘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예 수중에 없었던 결과에 대해 가까스로 놓쳤다는 인위적인 아쉬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꼬리뼈를 지키지 못한 이유


필자의 경우 순간의 실수와 불운으로 꼬리뼈를 지키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크게 느껴지지만 생각해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부주의함과 칠칠지 못함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사고의 원인이 돌발적인 상황과 불운에 있다고 아쉬움을 느끼지만 정말 이것이 순수하게 돌발적인 상황에 의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인지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래 잘 넘어지고 다치고 멍들고 하는 편이어서 어쩌면 그간 그렇게 부딪혀 왔음에도 여기저기 부러지지 않은 것이 더 놀라워해야 할 결과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나의 경우 후자가 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반응일 것이다. 


우리는 내게 찾아온 행운이나 기적은 당연하게 여기는 반면 불운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발대발하곤 한다. 불운에 대해서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이라며 억울해 하지만 사실 이러한 불운을 계속해서 피하는 것이나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내게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 쪽이 어쩌면 더 작다는 사실은 잘 고려하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던 나쁜 일들 못지 않게,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 실제로 아슬아슬하게 피한 불운이나 아슬아슬하게 겪은 행운들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꼬리뼈를 다친 슬픔과 억울함을 토로했더니 나의 지혜로운 친구는 내게 “너의 평소 행실을 고려하면 분명 언젠가 다쳤을 것인데 훨씬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다치지 않고 비교적 젋은 지금 다친 것이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억울함이 빠르게 감소했다. 물론 앞으로는 행동거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쓸 것이다. 꼬리뼈는 소중하다. 

 

※참고자료

-Roese, N. J. (1997). Counterfactual thinking. Psychological Bulletin, 121, 133–148.
-Medvec, V. H., & Savitsky, K. (1997). When doing better means feeling worse: The effects of categorical cutoff points on counterfactual thinking and satisfac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2, 1284–129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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