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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복지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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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복지에 대한 고찰

2014.06.23 18:00
[강석기의 과학카페 183] 고통 느끼는지 여부 여전히 논란 중

 “아니 뭐 하세요?”
 “아 예. 그냥…”
 “어머, 마음이 약하신가봐. 호호”

 

  회를 먹으러 가다보면 가끔 회를 뜬 물고기 뼈 위에 살점을 얹어 내놓는 집이 있다. 그런데 물고기가 아직 살아있어 입을 뻐끔뻐끔한다. 아마 주방장의 회 뜨는 솜씨를 자랑하거나 물이 좋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러는 것 같다. 아무튼 마음이 불편한 필자는 깻잎이나 상추로 생선의 얼굴(머리)을 덮는다.

 

 ‘이런 위선자 같으니라고. 그럴 거면 먹지를 말든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굳이 아직 숨이 붙어있는 정말 ‘뼈만 남은’ 물고기를 현장으로 데리고 와, 자기 살점이 젓가락에 들려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한다는 건 좀 잔인한 일 아닐까.

 

  수년 전 TV에서 영화를 보다 야한 장면도 아닌데 자꾸 뿌옇게 처리돼 이상하다 했는데 알고 보니 담배를 가리는 거라는 걸 깨달은 기억이 난다. 요즘은 손에 들린 흉기도 이렇게 가려진다. 아마 방송법이 바뀐 것 같다. 여행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몽골 현지인이 초원에서 양을 잡는 장면은 뿌옇게 처리된다.

 

  그럼에도 생선은 여전히 예외다. 맛집 탐방 프로그램을 보면 회를 뜨는 장면은 물론이고 펄펄 끓는 전골냄비에 살아있는 낙지나 문어를 넣는 장면도 하이톤의 내레이션과 함께 경쾌하게 그려진다. 불쌍한 두족류가 온 몸(여덟 다리)을 뒤틀며 벗어나려는 부질없는 시도가 지난 뒤 화면이 바뀌어 완성된 요리에 ‘조용히’ 잠겨있는 걸 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우리나라도 먹고살만해지면서 분명히 동물복지도 꽤 나아졌는데(요즘은 개도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지위가 격상됐다!) 왜 물고기의 처지는 그대로일까.

 

  필자는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먼저 어류는 포유류나 조류에 비해 피가 그렇게 많지 않다. 따라서 죽이는 장면에서도 유혈이 낭자하지 않아 굳이 뿌옇게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고기는 침묵의 동물이다. 힘이 있을 때도 몸을 파닥거리며 저항할 뿐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만일 회 접시 위의 생선이 “낑낑”하며 신음소리를 낸다면 신경이 쓰여서 회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는데, 하루는 돼지를 잡는다는 얘길 들었다. 호기심에 근처까지는 갔지만 무서워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꾸에엑 꾸에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돼지우리에서 “구륵구륵”하는 낮은 톤의 소리만 들어왔던 필자는 그 소리의 비통함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 뒤 ‘돼지 멱따는 소리’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어린 시절 그 기억이 떠오르며 ‘우리 조상들이 정말 제대로 비유를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동물복지법에 어류는 포함 안 돼

 

  학술지 ‘동물 인지’ 온라인판에 물고기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논문이 실렸다. 호주 맥쿼리대 생명과학과 컬럼 브라운 교수가 쓴 리뷰논문으로 제목은 ‘물고기 지능, 감수성, 윤리’다.

 

  오랫동안 어류의 지능과 사회생활을 연구하고 있는 브라운 교수는 “물고기가 온혈동물의 수준으로 동정을 받거나 복지를 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사람들이 물고기의 지능에 대해 느끼는 것과 과학의 실체 사이의 차이도 원인의 하나”라며 글을 시작한다. 물고기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건 우리나라나 서구나 마찬가지인가보다.

 

호주 맥쿼리대 컬럼 브라운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물 인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물고기의 인지능력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물고기의 복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 맥쿼리대 제공
호주 맥쿼리대 컬럼 브라운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물 인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물고기의 인지능력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물고기의 복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 맥쿼리대 제공

  동물 복지에 지능을 따지는 건 동물의 인지능력이 판단의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사이 유럽에서 유인원을 실험동물로 쓰는 일이 금지되고(심리, 행동 연구 제외) 미국에서도 연구가 줄줄이 중단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하물며 ‘쥐 같은’ 동물도 비윤리적이라며(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화장품 연구에는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르네 데카르트가 사람을 제외한 동물은 ‘축축한’ 기계라고 선언한 뒤 자행돼 온 무지막지한 동물실험 관행은 이처럼 서서히 나아지고 있지만, 미국의 동물복지법의 ‘동물’에는 여전히 어류가 포함돼 있지 않다. 브라운 교수는 이런 법률의 진전에는 여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이 리뷰를 통해 물고기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목소리도 표정도 없는 물고기

 

  브라운 교수 역시 사람들이 물고기에게 그다지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 대고 있다. 흥미롭게도 하나는 필자와 똑같이 우리가 물고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얼굴 표정이 없다는 것. 이 두 특징은 사람이 동정심을 갖게 되는 데 주요 실마리가 되기 때문에 물고기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화에 대한 오해도 이런 차별에 기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류에서 양서류, 양서류에서 파충류,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가 나왔다는 식으로 척추동물의 진화를 이해하고 있고, 따라서 물고기는 가장 하등한 척추동물로 생각한다.

 

  브라운 교수는 “어류의 역사는 5억 년이 넘는 게 맞지만 나머지 척추동물들은 약 3억6000만 년 전 물고기처럼 생긴 공동조상에서 진화한 것”이라며 진화는 선형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방사적으로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또 4억 1000만 년 전 데본기가 ‘어류의 시대’인 건 맞지만, 물고기의 종분화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건 ‘불과’ 5000만 년 전이고, 종다양성의 정점은 대략 1500만 년 전이라고. 오늘날에도 어류는 알려진 것만 3만2000여 종으로 다른 척추동물을 압도하고 있다.

 

  브라운 교수는 물고기도 다른 척추동물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입증’하고 있다. 먼저 물고기의 지각능력을 알려준다. 지능이나 감수성이 발달하려면 주변환경에서 충분한 정보를 끌어 모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시각을 보면 대부분의 종이 4색성이라고 한다. 즉 파랑, 녹색, 빨강의 3색성인 사람보다도 광수용체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이다(각각 최대 흡수파장은 400, 450, 530, 620나노미터).

 

  후각은 말할 필요도 없다. 후각이 예민한 걸로 유명한 상어의 경우 민감도가 사람의 1만 배다. 반면 미각은 퇴화돼 신맛과 쓴맛 정도를 느낀다고 한다. 청각은 꽤 발달해 있는데, 참고로 물속에서는 음파가 공기에 비해 4.5배나 빠르게 전파된다. 귀의 구조, 특히 내이의 구조는 모든 척추동물에서 잘 보존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물 밖으로 나오면 뻐끔거리는 게 전부이지만 물고기의 절반가량이 물속에서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결국 물고기는 다른 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지능과 감수성을 발당하는데 필요한 정보습득 장치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말이다.

 

●쥐보다 빨리 학습하기도 해

 

  이제 브라운 교수는 두 번째 단계인 물고기의 인지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고기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여러 예를 들어가며 보여주는데, 꽤 참신하다.

 

  먼저 물고기가 사람을 알아본다는 일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호수의 물고기에게 손으로 먹이를 주는 습관을 들였다. 그 뒤 6개월 동안 자리를 비운 뒤 돌아와서 먹이를 주러갔는데 불과 3분만에 고기들이 찾아왔다고. 반면 낯선 사람이 와서 똑같이 먹이를 내밀어도 고기들은 오지 않는다고.

 

  또 물고기의 학습능력을 보여주는 예로 아침에는 수족관 이편에, 저녁에는 저편에서 먹이를 주는 실험이 있다. 모기잡이(송사리류)와 갤락스드는 2주 정도가 지나자 이 패턴을 알아차리고 때가 되면 아침과 저녁에 각각 다른 지점에 모여 밥을 기다렸다. 쥐에게 비슷한 실험을 하면 패턴을 알아차리는데 19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잘 좀 해봐. 딴 데로 가는 수가 있어.” 청소놀래기(아래 작은 물고기)의 ‘1인 미용실’을 찾은 고객(검은쥐치)이 청소놀래기가 일을 잘 하나 지켜보고 있다. 청소놀래기는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의 서비스를 다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제공
“잘 좀 해봐. 딴 데로 가는 수가 있어.” 청소놀래기(아래 작은 물고기)의 ‘1인 미용실’을 찾은 고객(검은쥐치)이 청소놀래기가 일을 잘 하나 지켜보고 있다. 청소놀래기는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의 서비스를 다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사회적 지능에 대한 연구결과도 놀랍다. 청소놀래기의 행동은 우리로 치면 ‘1인 미용실’을 운영하는 수준이다. ‘고객’의 몸에 붙어있는 기생충이나 죽은 피부를 떼어먹고 사는 청소놀래기는 ‘단골’이 있어 이들을 따로따로 관리한다. 1인 미용실이 여러 곳 있으므로 고객관리가 무척 중요하다고. 관리를 잘 해주면 평판이 올라가 고객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그러면 청소놀래기는 기다릴 만한 곳이 없는 고객부터 관리를 시작한다고.

 

  실수로 고객의 몸을 물면 고객이 놀라서 자리를 뜨는데, 이때 청소놀래기가 따라가 상처를 보듬어주며 실수를 사과한다고. 그러면 마음이 풀린 고객이 다시 몸을 맡긴다고 한다. 거의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 수준의 이야기 같지만, 2001년 ‘런던왕립학회지B’에 발표된 논문의 내용이다.

 

  한편 숫자 감각도 나름 괜찮다. 예전에는 수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사람에 고유한 특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뒤 원숭이나 닭 같은 동물에서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를 가늠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 눈에 개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과 상대적인 숫자를 비교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필자처럼 K팝에 문외한인 사람이 TV에서 에프엑스를 보면 한 눈에 다섯 명인지 알 수 있지만, 소녀시대는 세보지 않으면 정확히 알 수 없다. 반면 소녀시대가 에프엑스보다 많다는 건 한 눈에 알 수 있다.

 

  물고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엔젤피쉬의 경우 사람처럼 두 가지 시스템을 다 활용해 숫자를 파악한다. 즉 떼로 몰려있을 경우 숫자 비율이 2:1이 채 안 되는 수준까지 구분할 수 있다고. 또 개별 숫자를 파악하는 능력을 보면 1과 2, 2와 3까지는 구분하는데, 3과 4, 4와 5는 구분하지 못한다고. 즉 세 개 까지는 한 눈에 보고 셀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구피는 사람처럼 3과 4도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실험은 어떻게 하나?’ 궁금한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물고기는 무리를 이루려는 속성이 있는데(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큰 무리를 선호한다. 따라서 양쪽에 다른 숫자의 무리를 둔 뒤 어느 쪽으로 가느냐를 보고 수 능력을 판단한다.

 

●의식은 신피질의 전유물?

 

  이제 마지막으로 물고기가 고통을 느끼냐 하는 문제가 남았다. 물고기가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현재 포유동물에게 해주는 수준의 대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마 물고기가 고통을 못 느낄까?’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할 독자도 있을 텐데,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반응은 동물이 고통을 느껴서가 아니라(의식의 차원) 그저 몸의 반사작용(무의식의 차원)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횟집에서 몸에 칼이 들어와 파닥거리는 활어도 고통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통각수용체’가 자극을 받아 신호가 전달된 것뿐이라고.

 

  미국 와이오밍대 제임스 로즈 교수가 이런 주장을 대표하는 학자로, 최근 학술지 ‘생선과 어업’에 ‘물고기가 정말 고통을 느낄 수 있나?(Can fish really feel pain?)’라는 제목의 37쪽에 이르는 긴 논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솔직히 필자는 논문을 읽지는 못했지만(브라운 교수의 논문도 17쪽 짜리다!), 요지는 물고기의 뇌에는 신피질이 없기 때문에 의식도 없다는 것. 즉 물고기는 뇌에 인지적 복합성이 자리 잡을 하드웨어가 없기 때문에 고통에 대해 정서적 차원에서 반응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고기는 상당한 수준의 숫자 개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밝히는 실험 방법으로, 양쪽에 서로 다른 숫자의 물고기 무리들 둔 뒤 물고기가 가는 방향이 유의미할 경우 수를 구분한다고 판단한다. 참고로 물고기는 무리가 큰 쪽을 선호한다. - 플로스원 제공
물고기는 상당한 수준의 숫자 개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밝히는 실험 방법으로, 양쪽에 서로 다른 숫자의 물고기 무리들 둔 뒤 물고기가 가는 방향이 유의미할 경우 수를 구분한다고 판단한다. 참고로 물고기는 무리가 큰 쪽을 선호한다. - 플로스원 제공

  반면 브라운 교수는 어류도 다른 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의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의식은 여러 층위가 있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 쾌감을 느끼는 고차원적인 의식도 있지만 두려움이나 고통을 느끼는 의식의 층위도 있고 이런 원초적인 의식은 모든 척추동물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피질이 없어서 의식을 못 느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모든 척추동물이 동일한 뇌구조를 갖게 진화한 것은 아니라고 반문한다. 즉 새들도 신피질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고통을 느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신피질이 의식을 담당한다는 주장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즉 사람에서도 핵심 의식이 계통적으로 보존된 원시 뇌 영역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이 내용은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의 명저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브라운 교수는 논문 결론에서 “물고기가 보여주는 인지적 복잡합의 수준은 다른 척추동물과 대등하다”며 “다른 동물들이 감수성이 있다고 간주한다면 물고기도 그렇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세대가 지난 어느 날 횟집에서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

 

 “옛날에는 회를 떠 뼈만 남은 살아있는 물고기도 같이 접시에 담겨 나왔단다.” (노인이 된 필자)
 “에이, 설마요.”(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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