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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지식전쟁의 최전선으로]①대학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면 대학 연구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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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지식전쟁의 최전선으로]①대학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면 대학 연구 지원해야

2021.06.16 13:1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요즘은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게 미래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 시대이다. 2018년 소재ˑ부품ˑ장비 (소부장) 분야에서 일본과 마찰을 슬기롭게 극복하자 마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라는 거센  광풍을 맞아야 했다. 불과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K방역(한국형 방역)의 성공과 환호는 급격히 뒷전으로 밀리고, 백신 부족이란 수세에 몰리는 경험까지 했으니, 격세지감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소부장 분야를 튼튼히 준비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키트,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일치감치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자와 이로 인해 숨진 사람이 급격히 늘면서 한때 선진국임이 무색하던 미국은 백신 개발 성공과 빠른 접종 전략으로 다시 한번 진정한 선진국임을 입증했다. 선진국은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맞닥뜨려도 얼마든지 대응할 돌파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물살의 흐름을 바꾸고 반전시키는 저력이 있다는 것을 보면 한 나라의 과학기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의 산업 발전은 과학기술 역량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팬데믹 상황에서 K방역의 성공과 더불어 국격의 상승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빠른 대처와 함께 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진단키트를 빨리 개발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과학 역량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1980년대 신학문 분야이던 유전공학(1984년 유전공학육성법 시행)을 위시한 생명과학 연구를 꾸준히 지원한 정부 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많은 수의 생명과학 인력이 배출됐고 유전자 분석에 사용되는 PCR(중합효소연쇄반응) 기법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국가 전체 역량이 축적된 결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30년 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지원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정보기술(IT)에 비해 ‘돈 먹는 하마’라는 힐난을 받았던 생명과학, 바이오기술(BT) 연구가 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에 기여할 것이라고는 대부분 상상하지 못했다. 같은 이치로 한국이 백신 개발에 뒤쳐진 이유는 관련 분야에 인력과 기술력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는 것만이 미래를 대비하는 최고의 보험이자 최선의 대비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서구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 지금도 가장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은 대학이다. 새로운 학문이 태어나고 기존 학문이 벽을 허물고 융합하기도 한다.  제품 개발을 위한 응용 개발 연구보다는, 원리를 찾아 응용을 탐색하는 모든 과학기술이 시작하는 공간이다. 각 분야에서 연구활동의 경험과 결과는 이론을 습득하는 강의에 반드시 투영된다. 학생들은 실험ˑ실습을 통해 연구의 기초에 입문하고, 대학원 학위 과정을 통해 연구의 기본을 습득하며 전문 연구자로 성장한다. 대학을 고등교육기관이라고 부르는 근거는 대학이 기존의 지식을 단순히 강의하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연구의 씨를 뿌려 스스로 연구할 능력을 갖춘 모종 단계의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은 분리될 수 없다. 연구가 꾸준히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신학문과 최신 기술로 무장한 우수교원을 임용해도 10년내 진부한 연구자로 쇠퇴하기 쉽고 그만큼 인재 양성은 부실해지기 마련이다. 대학이 배출한 연구자들은 정부출연연구소나 기업에서 연구개발(R&D)을 담당할 인재들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의 연구는 결국 한 나라의  미래 산업발전의 씨앗에 해당한다. 세계 각국이 국가 차원에서 대학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그림1) 대학 개혁을 통해(맨 아래 표)  대학 연구의 질을 높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지금처럼 급속히 과학기술과 경제 성장을 이루는 수면 아래에는 1996년부터 단행된 대학연구 인프라 확충과 연구의 고도화를 위한 여러 차례 개혁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학 연구에 투자를 급진적으로 증가시키는 정책적 뒷받침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대학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도 대학 교육을 강의 교육에 한정하는 우리 사회와 정부의 인식이 세계적 흐름에 뒤처져 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대학이 연구기관이라면, 당연히 대형 연구시설과 연구장비, 이를 운영할 전문 연구지원 인력, 연구에만 전념하는 연구 전담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체계적인 기반 위에서 ‘연구비’로 연구용 시약과 재료를 구입하며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연구활동이다. 하지만 한국은 1980~1990년대 대학의 양적 팽창시기를 거치며 강의에 치중된 교육이 주를 이루게 됐다. 그리고 연구는 대학의 부기능으로만 인식돼 왔다.

 

그러다보니 대학에서의 연구는 체계적인 기반 없이 교수가 개인 자격으로 정부나 민간 기업으로부터 과제를 수주해 받은 연구비에 의존해 왔다. 이에 따라 대학의 연구기반과 연구 전담인력이 취약해지면서(그림2) 대학원생의 과다한 연구 노동이 문제로 떠올랐고 유능한 연구자가 신임교수로 임용됐어도 연구 기반을 마련하는데 3~5년의 시간을 허비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유능한 셰프를 고용했지만 오븐이 없고 보조인력이 없는 주방에서 견습생과 휴대용 가스버너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와 대학원생들 열정으로 연구비 수주 경쟁을 거치면서 한국 과학이 이만치 성장했지만 과연 이대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다.  

올해부터 학령인구가 줄면서 대학들은 문닫을 위기에 처해있다. 오랜만에 대학의 문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 듯하다. 대학 위기의 본질을 진단하고, 어떻게 하면 대학을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언론의 관심은 신입생 수 감소에 따른 대학의 재정 위기에 국한되어 있다. 대학 통폐합과 대학정원 줄이기에 한정된 대책들만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장기적인 청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대학의 기능을 회복하고 어떻게 하면 대학을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대학의 진짜 위기가 대학이 연구기관으로 인지되지 못하고 연구기반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음을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세계의 우수한 학생을 유인하고 유능한 연구자를  유치하려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연구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대학에는 워낙 많고 다양한 분야에서 기초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대학에서 다양한 연구가 지속되도록 지원해야할 책무가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연구가 필요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랜 전통의 대학 역사를 가진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선진국과 일본에서는 주로 교육부에서 출자한 일반대학연구진흥금(GUF)을 통해 연구시설과 장비를 구비하고 연구인력을 고용하고 신임교수의 정착 연구비와 교수 연구비를 보조해 대학 연구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따라서, GUF는 각 국가의 중앙정부 연구개발(R&D)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투자요소다. 미국 대학에서는 중앙정부로부터의 GUF 대신에, 막대한 금액으로 유치되는 기부금들을 통해 연구를 지원한다. 이런 대학연구지원책들은 바로, 다양한 기초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마련된 조치다. 

 

기초연구가 발전한 나라가 신학문과 신기술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항상 숨가쁘게 뒤쫓는 연구를 수행하는 국가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이를 타파할 방법은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도록 장기간 지원하고 어느 분야이든 잠재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대학연구기반 확립을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정책이 펼쳐진 적이 없다 (그림 3). 부끄럽게도, 주요7개국(G7)을 바라보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GUF 항목 비중이 0%인 4개국 가운데 하나다(그림 4). 그렇다고 미국과 같이 거대한 규모의 기부금이 대학에 유치될 만큼 경제규모가 큰 것도 아니다. 정부 차원의 대학 연구 지원이 없으니 대학은 빠듯한 재정에서 연구에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연구기반을 체계적으로 갖춘 대학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G7에 진입하고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교수의 과제연구비에만 의존하게는 기형적인 연구지원 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 튼튼한 연구기반위에 창의성을 경쟁하는, 진정한 대학연구가 부흥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정부 당국인 교육부가 나서서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대학에서 연구자가 줄고 연구의 다양성이 훼손되면, 그때부터는 대학 위기를 넘어서 국가 위기가 언제 어느 형태로 다가올지 모르게 된다. 갑자기 출현하는 성장 기회를 놓치기 쉽고 발전적인 미래를 기약하기도 당연히 어렵다. 대학에서 버릴 연구분야는 하나도 없다. 물리학, 천문학, 화학, 생명과학, 의과학, 공학, 수학의 어느 한 분야라도 연구의 명맥이 끊기고 연구 인력이 꾸준히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이면, 어떠한 새로운 기술 시대가 나타나도 주도권을 찾기 어렵고 뒤쳐질 수밖에 없다.  대학 정원을 줄이는 방책은 대학 재정 위기를 모면할 단기적 처방일 뿐이다. 

 

우리는 학령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대학 연구가 더불어 위축되지 않도록, 더 큰 위기의 발발을 방지할 장기적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 있는 대학들을 대학원생에만 의존하지 않는 연구기관으로 확립하는 방법이 그 처방 중 하나다. 그래야 미래가 살고, 국가 지역 균형 발전도 가능하다.  


대학 연구의 텃밭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해당 분야에서 모종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기업에서는 씨부터 뿌리는 것보다 모종을 가져다 심는 것이 훨씬 산업을 빠르게 키우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라는 말이 있다. 씨를 뿌려 다양한 모종을 확보한 농부는 시장을 선점하고 원하는대로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대학의 재정 위기가 가시화된 올해해가 고등교육의 방향과 대학연구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통해 지속적인 국가 성장을 위한 백년대계를 세우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최은영 서울대 의대 교수(기초연구연합회 부회장)
최은영 서울대 의대 교수(기초연구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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