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대학을 지식전쟁의 최전선으로]④ 대학연구를 팀플레이로 도약시키자

통합검색

[대학을 지식전쟁의 최전선으로]④ 대학연구를 팀플레이로 도약시키자

2021.07.06 17:00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 사회에 끊이지 않는 인권침해 및 노동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됐다. 대학원생노조 제공
대학들의 연구지원 인력의 부재로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연구활동이 아닌 다른 업무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면서 연구 몰입도와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중 삼중의 부담을 떠안고 있는 대학원생들은 가장 큰 피해자라고밖에 볼 수 없다. 사진은 대학사회에서 대학원생의 노동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된 대학원생노조 출범식. 대학원생노조 제공

후배 과학자가 박사 학위논문에 쓴 감사의 글에서 “석사를 마칠 때는 '연구란 산을 오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연구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문장을 읽은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이 됐고 연구의 속성을 제대로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선장, 항해사, 기관장, 통신사, 조리장이 하나의 팀을 구성하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과학기술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도 마찬가지로 개인이 아니라 팀에 의해 수행이 된다.

 

그렇다면 연구팀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한 사람의 연구자는 대학원생에서 박사급연구원, 연구책임자(교수 또는 정규직 연구원)의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한다. 연구역량이 높은 연구팀은 성장 단계가 다른 대학원생, 박사급연구원, 연구책임자가 균형 있게 모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팀에 행정업무와 인프라 운영을 담당하는 지원인력의 도움도 필요하다. 즉, 역할이 다른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탐구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지식의 전수와 축적, 창조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 한 사람의 과학기술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연구 주제의 선정, 실험 설계와 수행, 실험 결과 해석, 논문 작성, 다른 연구자와의 협력을 포함한 지식의 발견과 창조를 경험한 박사급연구원들은 연구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팀에서 진행되는 연구를 주도적으로 수행할뿐 아니라 연구책임자인 교수와 함께 대학원생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우수한 박사급연구원의 존재는 연구팀에 지적 활력을 불어 넣고, 연구 활동의 경쟁력과 수월성을 제고한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연구집단으로 인정받는 영국 케임브리지 MRC 분자생물학연구소의 연구팀은 박사급연구원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선 평균적으로 연구책임자 한 사람과 대학원생 두 명, 8명의 박사급연구원으로 팀을 이룬다. 또 이곳 연구책임자들은 평균 4명의 연구지원 인력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지원인력은 연구자들에게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연구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 주문, 연구비 집행과 정산, 각종 서류 작성을 포함한 행정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기 때문이다. 또 고가의 실험장비들은 언제든 연구에 투입되도록 이들을 통해 적절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 중 하나인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에는 500여명의 연구지원 인력이 3000명에 이르는 연구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밀착 지원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대학의 연구팀은 대부분 연구책임자와 대학원생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소수의 일반대학과 과학기술특성화 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원생의 구성도 박사학위생이 아닌 2년 과정의 석사학위생이 주를 이룬다. 국내에서 연구 환경이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서울대의 경우에도 박사급연구원의 수는 해외 경쟁 대학의 10% 수준에 머문다. 연구지원 인력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국내 대부분의 대학 연구팀들은 지원 인력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불완전한 인력 구성의 결과로 국내에서는 대부분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박사급연구원의 역할과 연구지원 업무까지 짊어지고 있다. 박사급연구원의 부재와 석사학위생 중심의 인력 구성은 연구활동이 연구책임자의 아이디어에만 의존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연구팀이 지적으로 정체되고 편협해지는 현상을 가져온다. 지원 인력의 부재로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연구활동이 아닌 다른 업무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면서 연구 몰입도와 효율성도 크게 떨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이중 삼중의 부담을 떠안고 있는 대학원생들은 가장 큰 피해자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일본과의 반도체 소재 분쟁과 코로나19 백신 수급 문제는 우리가 치열한 과학기술 패권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불 능력이 있어도 이런 전략 상품들의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과학기술계의 연구역량 강화는 필수적이다. 축구를 예로 들면 여러 포지션의 선수들이 정상적으로 포진한 팀과 공격수와 미드필더 없이 수비수 몇 명 만으로 이뤄진 팀이 경기를 한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필자는 한국의 대학 대다수 연구팀이 소수의 수비수만으로 구성된 축구팀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한다. 국내 대학 교수 1인당 평균 연구비가 1억원 미만임을 감안하면 박사급연구원과 연구지원 인력을 교수 개인이 고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개인 연구비를 통해 박사급연구원과 연구지원 인력이 긴 호흡으로 연구에 몰입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국내 대학들은 지원받지도 못하지만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대학에 지원하는 일반대학연구진흥금(GUF)같은 교비 형태의 안정적 연구 재정 지원을 통해 교수, 직원, 학생뿐 아니라 박사급연구원과 연구지원 인력도 대학의 주체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물적·제도적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 연구소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대학 연구소들은 전임연구원의 수가 평균 0.8명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반면 세계적인 대학들은 연구소들이 대학 연구활동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 박사급연구원과 연구지원 인력이 연구소의 전임연구원으로서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고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국내 과학기술계 인력 구조 개선에서 주의할 점은 정상적인 연구팀의 구성이 소수의 교수에게만 허용이 되는 특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만 해도 국내 과학기술계에 만연해 있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선 소외된 분야였고 결국 우리 사회는 지금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소수의 특혜 받은 연구팀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정상적인 연구팀 구성이 보편적인 상식이 될 때 국내 과학기술계는 어떤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연구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차선신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 교수
차선신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 교수

 

※필자소개
차선신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 교수.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포스텍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포항가속기연구소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책임연구원을 거쳐 2016년 이화여대에 부임했다. 미생물학 저널 부편집인, 한국단백질학회 총무, 한국생체분자과학연합학회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결정학회 총무를 맡고 있으며 기초연구연합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4 + 4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