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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느려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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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느려지는 시간

2021.07.08 15:00
무거운 천체에서 빛이 천체 바깥쪽으로 진행하면 파장이 길어지는 ′중력 적색편이′가 일어난다. 인트로니 제공
무거운 천체에서 빛이 천체 바깥쪽으로 진행하면 파장이 길어지는 '중력 적색편이'가 일어난다. 인트로니 제공

일반상대성이론의 뼈대를 이루는 원리인 등가원리를 활용하면 빛에 대한 놀라운 결과를 하나 도출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우주선을 상상해 보자. 우주선 안의 우주비행사가 진행방향을 전등을 비춘다. 우주선의 앞쪽에는 빛을 감지하는 장치(광센서)가 있다. 만약 우주선이 앞쪽으로 가속운동을 하고 있다면 광센서가 빛의 펄스를 하나 받고 나서 그 다음 펄스를 받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따라서 광센서의 입장에서는 빛의 파장이 점점 길어지는 것으로 관측하게 된다. 이는 관측자가 광원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도플러 효과이다. 


여기에 등가원리를 적용해 보자. 등가원리에 따르면 가속운동은 중력으로 바꿔칠 수 있다. 우주선이 앞쪽으로 가속하고 있다면 이 상황은 정지한 우주선의 뒤쪽에 아주 무거운 천체가 중력을 발휘하는 상황과 똑같다. 앞으로 가속하는 우주선에서 관성력이 모든 물체를 뒤로 잡아당기는 것이나 무거운 천체가 중력을 발휘해 모든 물체를 잡아당기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무거운 천체에서 그 천체의 바깥으로 빛이 진행하면 빛의 파장이 길어진다. 이것을 '중력 적색편이'라고 한다. 천체의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은 중력을 거슬러 움직인다는 뜻이다. 즉, 중력이 강력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빛이 빠져나올 때 그 파장은 길어진다. 

 

우주에는 질량이 무거운 천체들이 많으니까 이를 이용해 중력 적색편이를 관측할 수 있다. 백색왜성을 이용한 관측이 1920년대부터 시도되었고 1950년대에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상에서 지구중력에 의한 적색편이를 처음 관측한 것은 1959년으로, 미국의 하버드대 물리학자 로버트 파운드와 글렌 레브카가 교내 약 22m짜리 물리학과 건물에서 실험한 결과였다.


이 현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지구 표면에서 공을 위로 던지면 공의 속도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를 뉴턴역학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공이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운동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운동에너지를 잃어버리고 그만큼 중력 퍼텐셜이 커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구가 모든 물체를 중심으로 당기고 있으니까 어떤 물체라도 이를 뿌리치고 지구에서 멀어지려면 그만큼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한다. 이는 빛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빛은 질량이 없다. 고전역학에서는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질량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빛은 고전역학에서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그 에너지는 파동의 진폭의 제곱에 비례한다. 빛의 본질은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데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 결과만 간단히 소개하자면 빛은 (파동의) 진동수에 비례하는 에너지 덩어리를 가진 입자라고 할 수 있다. 빛은 진동수가 클수록 에너지가 크다. 파동의 진동수는 파장에 반비례하므로 빛은 파장이 짧을수록 에너지가 커진다. 이는 고전역학에서의 기술과 전혀 다른 성질이다. 

 

빛의 에너지가 진동수에 비례, 즉 파장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빛이 에너지를 잃을 때 파장이 길어진다는 결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빛이 중력을 거슬러 움직이면 에너지를 잃고 파장이 길어진다. 이것이 중력 적색편이이다. 

 

중력에 의한 적색편이는 중력에 의한 시간 간격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 이미 특수상대성이론에서도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 간격이 달라진다는 결과를 알기 때문에 일반상대성이론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있으리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는 중력의 본질이 시공간의 휘어짐 또는 뒤틀림이라는 사실이다. 공간이 휘어지고 뒤틀린다는 심상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트램펄린 위에 사람이 올라가면 움푹 패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시간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뒤틀린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시간 간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어떻게 달라질까? 

 

여기서 우리는 특수상대성이론의 결과를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정지한 사람이 봤을 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즉,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 간격이 커진다. 정지좌표계에서의 시간 간격이 가장 짧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근간이 되는 등가원리를 떠올려 보자. 등가원리에 따르면 속도가 변하는 운동, 즉 가속운동은 중력과 같은 효과를 낸다. 가속운동에 의한 관성력과 중력을 구분할 수 없다. 그러니까 중력은 가속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중력이 큰 물체가 주변에 미치는 효과는 적절한 가속운동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런데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좌표계의 시간이 느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마도 가속운동하는 좌표계에서의 시간도 느려질 것이다. 이 논의를 종합하면 이렇다. 중력이 강력하다는 것은 그만큼 가속운동이 심하다는 뜻이다. 어쨌든 움직임이 크니까 시간이 느려진다고 유추할 수 있다. 요컨대,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이 느려진다. 즉, 1초의 시간간격이 커진다.

 

NIST 알루미늄 이온 클럭에서 주요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온 트랩입니다. 알루미늄 이온과 파트너 마그네슘 이온은 전극 사이의 장치 중앙을 따라 흐르는 슬릿에 있습니다.   크레딧 : J. Koelemeij / NIST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가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알루미늄 이온 시계. NIST 제공

중력에 따른 시간간격의 변화를 실험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지난 2010년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의 과학자들은 굉장히 정밀한 원자시계(37억 년에 1초의 오차가 있을까 말까할 정도의)를 이용해 이 현상을 검증했다. 지구 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에서는 중력의 차이도 쉽게 느낄 수 없지만 그에 따른 시간의 변화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굉장히 둔감한 생명체여서 운동 상태나 중력에 따라 시간이 변하는 따위의 일은 벌어지지 않는 뉴턴역학의 절대적인 시간을 수백 년 동안 받아들였다.

 

따라서 아무리 정밀한 원자시계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중력차이에 따른 시간간격의 변화를 측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중력의 차이가 생기는 가장 간단한 경우는 지표면에서 높이가 달라지는 경우이다.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지구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중력이 약해진다. 그러니까 지표면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중력이 약해지고 시계는 빨리 간다. 문제는 지구의 반지름이 무려 6370km에 달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높이 차이에 따른 중력의 차이를 감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 추측된다. 

 

교양과학 수업시간에 이 실험을 소개하면서 으레 학생들에게 NIST의 원자시계처럼 37억 년에 1초의 오차가 있을 정도로 정밀한 시계를 여러분이 갖고 있다면 얼마 정도의 높이 차이에서 시간차를 측정해 보겠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의 답은 적게는 100m에서 많게는 100km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필자가 NIST의 과학자들이 실제 실험했던 높이 차이를 알려주면 수업 내용에 별 관심이 없던 학생들도 ‘우와’ 하는 탄성을 내뱉곤 한다. 그 높이는 겨우 33cm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정도의 높이 차이에서 과학자들은 79년에 900억분의 1초 정도 시간 차이가 난다고 측정했다. 


국내 언론에서 이 결과를 소개한 기사를 보면 고층에 살수록 빨리 늙는다는 식의 제목을 뽑은 경우가 꽤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아파트에 많이 사는 한국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겨우 33cm의 높이 차이가 초래하는 시간차를 감지할 정도라면 이보다 훨씬 더 큰 높이 차이에서 생기는 시간차는 더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식 위성측위시스템(GNSS)인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미국해양대기청 제공
미국식 위성측위시스템(GNSS)인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위성에 장착된 시계는 지표면보다 더 빨리 간다. 미국해양대기청 제공

대표적인 사례가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위성이다. GPS 위성은 지상에서 약 2만km 정도 높이의 궤도를 돌고 있다. 따라서 중력이 지표면보다 상당히 작을 것이고 그 결과 GPS 위성에 장착된 시계는 지표면보다 하루에 45.5마이크로초(1마이크로초는 100만 분의 1초) 더 빨리 간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도 나타난다. GPS 위성이 자신의 궤도를 도는 속도는 시속 약 1만4000km로 상당히 빠르다. 이 때문에 지표면에 대해서 특수상대성이론의 시간 팽창 효과가 작동하면서 GPS 위성의 시계가 하루에 약 7.2마이크로초 느려진다.

 

그러니까 GPS 위성에는 특수상대성이론의 효과와 일반상대성이론의 효과가 함께 (서로 반대방향으로) 적용되며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 GPS 위성에 원자시계를 탑재할 때에는 이보다 더 많은 보정요소들을 적용한다. 하루에 수십 마이크로초 정도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지상에서 큰 차이를 낼 수도 있다. 한국도 지금 자체적으로 광역위치지정 체계인 이른바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KPS)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바야흐로 한국도 우주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주로 나가려면 뉴턴역학은 물론이고 상대성 이론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기초과학은 이렇게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중력에 따른 시간차를 이용하면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들 수도 있다. 지구상의 같은 위치에서 고도에 따라 당연히 중력이 달라지지만, 같은 고도에서도 서로 다른 위치에서 국소적으로 중력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지하에 물이 있느냐 금광이 있느냐에 따라 국소적으로 주변에 미치는 중력이 다를 것이다. 만약 초정밀 시계를 비행기에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그런 중력차이가 미세하게 시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차이를 시각화해서 지도로 표현한다면 공중에서 지면 아래 물질분포가 어떨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금광이나 석유를 찾으려 할 것이고 군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터널이나 벙커 같은 지하시설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 


좀 더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여러 번 말했지만 과학자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좋아한다. 만약 중력이 엄청나게 강해서 그 주변의 시간이 크게 뒤틀려 1초의 간격이 대단히 커지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대단히 크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무한히 크다, 즉 무한대가 된다는 뜻이다. 시간간격이 무한대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1초의 시간이 흐르는 데에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는 시간이 아예 정지한 상태가 된다. 즉,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그 정도로 중력이 강력한 곳이 있을까? 있다. 짐작했겠지만 바로 블랙홀이다. 

 

※참고자료

-Pound, R.; Rebka, G. (1960). "Apparent Weight of Photons". Physical Review Letters. 4 (7): 337–341.

-NIST, NIST Pair of Aluminum Atomic Clocks Reveal Einstein's Relativity at a Personal Scale, NIST News, September 23, 2010.;
-https://www.nist.gov/news-events/news/2010/09/nist-pair-aluminum-atomic-clocks-reveal-einsteins-relativity-personal-scale

-C.W. Chou, D.B. Hume, T. Rosenband and D.J. Wineland. Optical Clocks and Relativity. Science. Sept. 24, 2010.

-과학향기 편집부, 높은 데 살면 빨리 늙는다고?, 한겨레신문, 2010.11.15.;
https://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448720.html#csidxf130b0831fe8fe09a29ed62c8f57092 
-Andrew Grant, Quantum timekeeping, ScienceNews, FEBRUARY 21, 2014 AT 3:54 PM;
https://www.sciencenews.org/article/quantum-timekeeping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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