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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턴을 켜고 낮은 포복으로 탐험하는 '백룡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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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턴을 켜고 낮은 포복으로 탐험하는 '백룡동굴'

2021.07.31 06:00

 

-개구멍을 통과하는 ‘파고캐고 지질학자‘의 필자 우경식 교수. 개구멍을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화려한 동굴 풍경이 시작된다.
우경식 강원대 교수가 백룡동굴 초입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속칭 '개구멍'으로 불리는 구멍을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화려한 동굴 풍경이 시작된다. 동아사이언스

이달 12일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백운산 산자락에 자리한 백룡동굴. 컴컴한 동굴의 물웅덩이로 몸을 굽혀 들어가자 금세 속옷까지 차가운 물이 스며들었다. 한 사람이 몸을 납작 엎드려야 겨우 통과할 만한 크기의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야 동굴 내부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몸이 젖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찬 기운이 몸을 감싸자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백번 가까이 이곳을 찾았다는 우경식 강원대 교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눈을 질끈 감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바깥 기온은 이미 30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동굴 내부는 몸이 으슬으슬할 정도로 찬 공기가 맴돌았다. 동굴 속 온도계 수은주는 9도를 가리켰다. 동굴엔 별다른 조명이 없었다.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갔는데도 한 줄기 빛도 들지 않는 암흑 천지로 변했다. 

 

백룡동굴은 남한강의 줄기인 동강 옆의 백운산 기슭 절벽에 있는 석회동굴이다. 1976년 주민들이 발견한 이 동굴은 개방된 동굴이지만 표를 끊고 들어가는 다른 동굴과 달리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 동안 입장할 수 있는 인원도 제한하고 조명도 설치하지 않았다. 동굴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헬멧에 달린 가늘고 약한 랜턴 불빛에 의지해 들어가야 한다.  

백령동굴 입장객은 상의와 바지가 하나로 붙어 있는 점프슈트 스타일의 빨강 탐사복과 장화를 지급받는다. 허리를 숙이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도 자꾸 헬멧을 바위에 부딪혔다.
백령동굴 입장객은 상의와 바지가 하나로 붙어 있는 점프수트 스타일의 빨강 탐사복과 장화를 지급받는다.
허리를 숙이고, 낮은 포복으로 동굴 속을 기어가도 자꾸만 헬멧이 바위에 부딪혔다. 동아사이언스

동굴 입장객을 제한하는 이유는 동굴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취지도 있지만 동굴이 석회동굴이란 점도 고려됐다. 석회동굴은 석회암 지대에 지하수가 흐르면서 석회암이 녹아 형성된 동굴이다. 탄산칼슘으로 이뤄진 석회암은 이산화탄소가 많이 포함돼 있는 빗물과 지하수에 잘 녹는다. 평창군 최재훈 주무관은 "동굴이 개방되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동굴 내부는 입장객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갔다가 휴무일인 월요일에 뚝 떨어진다"며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나치게 올라가면 동굴 생성물이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입장객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와 일행이 찾은 이날은 바로 전주에 비가 많이 내려 동굴 내부 수위가 많이 올라간 상황이었지만 때마침 휴무일이라 물을 퍼내는 양수기가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동굴 입구도 물이 차있어 카메라와 조명 장비가 젖지 않도록 조심하며 구멍을 통과해야 했다.  최 주무관은 “원래는 동굴에 물이 차면 양수기로 물을 퍼내기 때문에 물에 젖지 않고도 동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초보 탐험가에겐 백룡동굴이 ‘인디애나존스’ 뺨 치는 탐험의 시작일 수 있지만 지질학자들 사이에서는 동굴 탐험의 묘미를 큰 어려움 없이 적절하게 경험할 수 있는 코스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자연 생태계와 주민 상생하는 체험형 동굴

 

전날 내린 비로 동굴 바닥엔 얇은 진흙이 덮여 있었다. 미끌미끌한 바위와 진흙 위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백룡동굴은 동굴을 품고 있는 백운산에서 앞글자를, 동굴 첫 발견자인 정무룡 씨의 이름에서 뒷 글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정 씨는 형제들과 1976년 백운산을 거닐다 작은 구멍에서 시원한 바람이 새어나오는 현상을 발견하고 가치 있는 동굴임을 직감하고 지방 관청에 사실을 신고했다. 우 교수는 “정 씨와 형제들은 1979년 백룡동굴이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이 동굴의 석순과 종유석을 떼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지켰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백룡동굴의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지역주민들과 공생할 수 있는 동굴 개발 모델을 자문한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동굴의 입장객과 조명을 제한하고, 지역 주민이 가이드가 돼서 동굴 안내를 맡는 체험형 동굴로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렇게 개발된 백룡동굴은 입장객을 맞이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자 동굴 벽에 꽃처럼 피어오른 동굴 산호를 비롯해 바닥에서 솟아오른 석순과 동굴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석순과 종유석이 붙어 형성된 기둥형태의 석주 등 형형색색의 동굴 형성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 너울거리는 동굴 커튼, 파이프오르간처럼 생긴 피아노석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 교수는 “이들 동굴생성은 수백만년 전 처음 형성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약한 불빛 너머에 어렴풋하게 넓은 공간이 보였다. 동굴의 끝에 자리한 대광장이다. 이날 공개된 구간은 길이 800m의 주 동굴이다. 백룡동굴은 가장 큰 주동굴을 중심으로 3개의 동굴이 가지를 치고 있는데, 이들을 모두 합한 전체 규모는 1800m에 이른다. 

백룡동굴 주동굴의 끝에 위치한 대광장. 바닥에서 솟아난 석순,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석순과 종유석이 만난 기둥인 거대한 석주가 우뚝 솟은 모습이 장엄하다.
백룡동굴 주동굴의 끝에 위치한 대광장. 바닥에서 솟아난 석순,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석순과 종유석이 만난 기둥인 거대한 석주가 우뚝 솟은 모습이 장엄했다. 동아사이언스

대광장에서는 거대한 석주를 비롯해 다양한 동굴 구조물들이 조명을 받아 은은한 빛을 냈다.  백령동굴에서 유일하게 조명이 설치된 곳이다. 구조물이 어찌나 큰지 사람이 마치 작은 모형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였다. 바닥을 보자 계란후라이라는 이름의 석순이 보였다. 동굴 바닥 한 곳에 오랜 기간 계속해서 떨어진 지하수에 녹아 있던 탄산칼슘이 쌓여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백룡동굴에는 관박쥐가 살고 있다. 하지만 이날은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강원도청에서 일하는 최돈원 박사는 “더운 여름에는 박쥐들이 시원한 안쪽으로 들어가는 데다 동굴에 인기척이 나면 더 깊숙이 들어가는 습성이 있어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동굴연구소는 2006년 백령동굴에 모두 56종의 생물체가 살고 있다고 발표했다. 빛도 없고 온기도 없는 동굴에서 동굴 박쥐의 똥은 이들 생물에 귀한 영양분이 되고 있다. 


이날 박쥐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동굴 속 물웅덩이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물웅덩이에 불빛을 비추자 희끗희끗 하얗고 작은 생명체가 물속에서 톡톡거린다. 최 박사는 '아시아동굴옆새우'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들어온 길을 따라 아름다운 동굴 구조와 생성물을 감상하며 어느덧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짧고 굵은 동굴탐사를 시작한지 2시간 30분이 흘러 있었다.  

 

하루 입장 가능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 백령동굴 입구엔 가로창살이 나 있다. 이는 관박쥐가 동굴을 드나들 때 날갯짓에 방해가 없도록 설계된 것이다.
하루 입장 가능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 백령동굴 입구엔 가로창살이 나 있다.
이는 관박쥐가 동굴을 드나들 때 날갯짓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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