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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눈 앞에 보이는 괴롭힘을 방관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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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눈 앞에 보이는 괴롭힘을 방관하는 사람들

2021.07.31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나 성적 괴롭힘을 방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제3자의 적극적 개입'이다. 교실 한 구석에서 뻔히 잘못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 본체만체 그냥 넘기는 것은 가해자에게 계속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용인하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반면 “그건 아니지. 선을 넘었네.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막거나 교사나 경찰 등 상황을 중재할 다른 책임자에게 알리면 괴롭히는 상대에게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줄 수 있다. 


성적 괴롭힘 또한 마찬가지다. 가정과 학교, 직장, 혹은 스포츠팀이나 화장실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희롱과 성추행뿐 아니라 여성이 머리가 짧다거나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사상 검증을 하고 트롤링(인터넷상에서 고의적으로 공격적이거나 불쾌한 글을 올리는 행위)에 시달리게 하는 '성차별적 학대' 역시 사회에서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줘야만 근절할 수 있다. 그냥 "쟤네 왜 저러냐"며 멀리서 구경하기보다 더욱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학대나 괴롭힘에 연루된 가해자들은 가만히 놔두면 괜찮은 줄 알고 계속 하는 성향을 보인다. 가정폭력과 성폭력도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거나 오히려 피해자에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더 많이 일어난다. 


만에 하나 괴롭힘이 나타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어떤 종류의 사회적 제지나 처벌이 가해졌다면 지금처럼 여성이나 특정 개인을 향한 묻지마식 폭력이 만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소견이다. 그만큼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폭력에 침묵하는 문화가 형성돼 작동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기도 하다.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강력범죄들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가해자를 제압하려 애쓰면서 성차별적 학대와 폭력에 왜 다같이 입을 다물게 된걸까.

 

최근 국제학술지 실험 사회심리학지에 소개된 미국의 심리학자 레이첼 굿윈의 연구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평소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일어나는 상황을 봤을 때 반드시 가해자를 만류하고 신고하겠다고 응답하지만 실제 상황에선 가해자에 대적하거나 신고하는 비율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구팀은 세 명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만들고 미리 두 명의 참가자와 짜고 이 중 남성에게 상황을 아는 다른 여성 참가자에게 성희롱 발언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예를 들어 여성 참가자가 자신의 취미가 서핑이라고 말하면 남성 참가자가 "수영복 입은 섹시한 엉덩이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렇게 눈 앞에서 성희롱이 일어났을 때 상황을 모르는 나머지 한 명이 가해 남성을 저지하고 연구진에게 성희롱이 발생했다고 알리는지가 연구팀의 관심사다.

 

사전 조사에서 64%에 이르는 사람들은 누군가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을 지켜본다면 적극적으로 가해자의 행동을 가로막고 신고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눈 앞에서 벌어지자 가해자의 행동을 문제삼거나 막아선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은 다른 방관자들과는 다르며 자기만큼은 정의롭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상황이 닥치면 침묵을 선택한다는 씁쓸한 결과다. 

 

실제로 이는 미국에서 학생 15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드러난다. 이들 가운데 약 3만명은 학교에서 성적 괴롭힘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겨우 18%의 학생들만이 가해자를 막아섰다. 

 

연구자들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특히 침묵하거나 반대로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살펴봤다. 목격자가 남성일 때보다 여성일 때 더 상황을 중재하고 신고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도덕적 용기'가 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상황에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도덕적 용기는 위험성이 큰 상황에서도 잘못된 일은 잘못된 것이라며 도덕적 행동을 관철하는 용기를 말한다. 가해자가 어른일 경우나 직장 상사인 경우처럼 불의와 맞서는 행위가 사회적 통념에 벗어나고 불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이 큰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는 의지라고 보면 된다. 또 다른 구성원들이 조직 이미지가 나빠지니 문제를 조용히 덮고 넘어가자며 집단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결연히 맞서는 용기도 포함한다.  

 

성적 괴롭힘은 주로 직장에서 ‘위계 질서’를 이용하기 쉽고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에서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고발했을 때 불이익이나 집단 압력이 큰 편이다. 즉 성적 괴롭힘의 방조자가 되지 않으려면 단순히 성적 괴롭힘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에 더해 투철한 용기와 강하고 구체적인 실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마음이 따듯하고 사람을 좋아하며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흔히 착하고 원만한 사람들이 피해자를 위해 나설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평소 원만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갈등을 피하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기가 커서 피해자와의 관계뿐 아니라 가해자와의 관계까지 신경쓰는 경우가 많다. 평소 성격이 원만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적 괴롭힘을 더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 공정함이나 정의 같은 가치보다 ‘충성’, ‘의리’ 같은 가치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 역시 성적 괴롭힘을 막으려는 행동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조직에서 '모난 돌' '내부 고발자'가 되는 일이 불의를 방조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의 여러 연구에서 성적 괴롭힘을 방관하는 행동과 관련을 보인 또 다른 특성은 ‘나르시시즘(자기애의 집착)’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등 자아가 비대한 편이다. 따라서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다른 사람을 이용할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이런 사람은 평소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착취하고 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데 성희롱이나 성추행 역시 자기가 할법 한, 그리 나쁘지 않은 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에 더 잘 이입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여성을 바라볼 때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자기 만족을 위한 도구 정도로 보는 오만함 또한 장착하고 있는 편이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원래 나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를 내 마음대로 쓰는데 뭐가 잘못 됐냐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인다. 그밖에도 무시를 당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살해까지 저지른 일부 범죄자들의 비대한 자아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도덕성이란 올바른 말만 입에 담는 것보다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도덕적 행동을 관철하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괴롭힘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현실 속의 괴롭힘이며 심리적 피해도 현실이다. 당장은 사소해 보여도 가만히 두면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에서 작은 괴롭힘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주변에 알리는 습관을 길러두자. 가해자의 변명에 함께 맞장구 치지 않아야 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이런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며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도록 하자. “그게 바로 폭력이야. 선을 넘었어. 하나도 재미있지 않아. 신고한다”를 기억하자.  

 

※참고문헌

-Goodwin, R., Graham, J., & Diekmann, K. A. (2020). Good intentions aren't good enough: Moral courage in opposing sexual harassment.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86, 103894.
-Kaufman Kantor, G., Jasinski, J. L., & Aldarondo, E. (1994). Sociocultural status and incidence of marital violence in Hispanic families. Violence and Victims, 9, 207–22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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