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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대학에서 실패한 과학자, 세상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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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대학에서 실패한 과학자, 세상을 구하다

2021.09.09 12:00

“대학에서 과학연구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카리코가 처했던 상황을 설명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가 평생 추구해온 모든 것이 단지 연구비가 없다는 이유로 날아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발전기 같은 사람이었다. 언젠가 카리코가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논문 여러편을 랩미팅에 복사해와 너무나 행복하게 그 발견들에 대해 설명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심지어 그의 연구분야도 아니었지만, 그는 그 연구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며 행복해했다. 그의 연구열정은 실험실 모두에게 전염되었다.” -카탈린 카리코 바이오엔테크 부사장의 전 동료 데이비드 스케일즈의 회고 중에서

 

 

과학자의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mRNA(메신저리보핵산)는 이제 일상어에 가깝게 자주 듣는 용어가 됐다. mRNA는 전령RNA라고 불린다. mRNA라는 약어를 풀면, 메신저리보핵산(messenger ribonucleic acid), 즉 전령리보핵산이 되는데 여기서 ‘m’이 의미하는 바가 유전체의 정보를 단백질로 전달하는 전령의 역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의 정보는 모두 DNA로 이루어진 유전체에 코딩되어 있다.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서열 순서에 정보를 저장하고, 단백질은 그 정보를 20여 종류의 아미노산 서열로 변환해야 한다. mRNA는 ’번역’이라는 과정을 통해 DNA의 염기서열 정보를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로 변환시켜주는 일을 수행한다. 이 역할이 마치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과 같기 때문에 mRNA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는 mRNA 백신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 헝가리 출신 과학자이자 현재 바이오엔테크 부사장인 카리코의 모든 관심사는 바로 이 mRNA에 모아져 있었다. 실제로 물벼룩의 지질에 대한 제2저자 연구 이후, 카리코가 저자로 참여한 대부분의 논문은 RNA의 변형과 세포내 반응이라는 주제로 집약된다. RNA가 세포내의 면역반응을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밝혀낸 2005년 논문은, mRNA를 질병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카리코의 연구가 수십년 만에 결실을 거둔 성과였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카리코가 극적으로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와이스만 교수를 만나 혁신적 논문을 출판했지만 카리코의 삶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거의 없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은 여전히 카리코를 지원하지 않았고, 이 논문을 읽고 그들에게 투자하겠다는 투자자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mRNA를 질병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된 카리코와 와이스만 교수는 ‘RNARx’라는 이름의 작은 바이오텍을 설립하고, 카리코는 이 회사의 CEO로 근무를 시작한다. 이 회사의 목적은 단 하나, mRNA를 변형해서 질병치료에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2005년 논문 출판 이후, 회사를 설립하고 연구를 계속해서 2008년에는 현재 mRNA 백신의 핵심기술이 된 수도우리딘(pseudouridine)’을 이용해 세포내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전달체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지만, 동료와 생명공학기업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와이스만 교수와 설립한 회사는 큰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채 고군분투했고, 2012년 항바이러스성 치료에 mRNA를 사용하는 기술에 특허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기술에 대한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펜실베이니아대는 특허를 아주 싼 가격에 게리 달이라는 연구기자재 납품회사의 대표에게 팔아치운다. 그리고 이 회사는 훗날 셀스크립트가 된다.

 

대학이 카리코의 특허를 팔아치운 몇 주후에, 현재 코로나19 mRNA 백신의 양대 산맥이 된 모더나사에 거대한 금액을 투자한 벤처캐피탈이 카리코에게 연락을 해왔고, 특허를 구매할 의향을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대학은 특허를 게리 달에게 팔아치운 후였다. 이후 게리 달은 이 특허를 모더나와 바이오앤 두 회사에 넘기게 되고, 바이오엔테크는 화이자와 손잡고 현재 우리가 접종하고 있는 mRNA 백신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mRNA 백신의 핵심기술을 개발하고도 비협조적인 대학과 안목 없는 투자자들 덕분에 고생을 했던 카리코와는 반대로, 모더나를 창립한 데릭 로시는 카리코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로시는 토론토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에 카리코와 와이즈만의 논문을 읽고, mRNA 백신의 가능성을 알게 됐다. 이후 하버드대 교수가 된 그는 아주 손쉽게 이 기술의 가능성을 들고 투자사를 찾을 수 있었고, 모더나를 창립했다. 

 

한 인터뷰에서 카리코 박사가 자신은 단 한번도 R01 그랜트를 타본 적이 없다고 웃으며 회고하는 장면
한 인터뷰에서 카리코 박사가 자신은 단 한번도 R01 그랜트를 타본 적이 없다고 웃으며 회고하는 장면

대학은 과학자의 진면목을 평가하지 못한다

 

카리코는 미국에 건너온 이후 제대로 된 연구비를 탄 적이 없었던 걸로 유명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40년 동안 단 한번도 미국립보건원(NIH) R01 연구비를 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R01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은 NIH가 운영하는 생명 관련 분야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으로, NIH가 개인 연구자에게 지급하는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로시는 카리코와 정반대의 길을 걸은 과학자다. 그는 캐나다와 미국의 최고 명문대를 거치며 과학자로 훈련받았고, 연구비 수주에서도 성공가도를 걸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연구비와 논문출판에서 나타나는 과학계의 이런 양극화 현상이, 현대 가속화되고 있는 바이오텍 창업으로도 이어진다는 데 있다. 로시는 한 인터뷰에서, 2021년 노벨화학상은 반드시 카리코와 와이즈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즉, 현재 모더나사를 있게 만든 핵심기술이 카리코 박사의 작품이라는 점을, 로시 자신도 잘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무명 과학자였던 카리코가 아니라 로시에게 큰 돈을 투자했다. 연구비와 논문출판에서 만들어진 후광효과가 창업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의생명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종사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주제다. 대학입학성적으로 인생이 달라지는 현재의 사회구조와 이 현상을 비교해본다면, 왜 이 문제가 ‘공정’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카리코 박사와 함께 와이스만 교수의 실험실에서 일했던 데이비드 스케일스 코넬대 웨일 의대 교수는 2021년 2월 “우리의 잔인한 과학연구 체계는 어떻게 mRNA 백신의 선구자를 죽일뻔 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카리코 박사의 기술로 만들어진 백신을 접종한 후 스케일스가 쓴 이 글에는 카리코 박사라는 과학계의 흙수저의 고집과 끈기가 어떻게 전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기술로 이어졌는지 자세히 쓰여 있을 뿐 아니라 무한경쟁으로 연구자들을 몰아넣는 현재의 미국 과학생태계가 지닌 암울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교훈을 준다.
 

카리코는 단 한번도 미국정부의 연구비를 타지 못한, 학계에서 실패한 과학자였지만, 그의 기술은 세상을 구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카리코 박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스케일스
카리코는 단 한번도 미국정부의 연구비를 타지 못한, 학계에서 실패한 과학자였지만, 그의 기술은 세상을 구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카리코 박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스케일스

스케일스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실험실의 수장이던 드류 와이스만 교수는 훌륭한 연구자였다고 한다. 그는 실험 디자인에 능숙했을 뿐 아니라, 연구의 기여를 밝히는데 있어 그 누구보다 공정한 인간이었다. 논문의 기여자가 학부생이던 박사이던 상관없이, 공정하게 기여도에 따라 논문저자의 순서를 정했고, 무엇보다 매우 자상하고 참을성 있는 교수였다. 그런 와이스만 교수 덕분에 카리코는 펜실베이니아 대의 지원 없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셈이다. 스케일스가 기억하는 카리코는 언제나 실험실에서 연구에 매진하던, 하지만 쓰는 연구비마다 항상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1류는 아닌 연구자였다. 하지만 카리코는 동유럽에서 넘어온 이민자였고, 동유럽 특유의 에너지가 배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속되는 연구비 탈락에도 굴하지 않고, 연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긍정적이고 행복해했으며, 자신의 분야 뿐 아니라 인근분야에까지 넓은 관심을 둔 열정적인 과학자였다. 

 

스케일스 교수는 카리코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연구비에 계속 떨어지던 어느날, 그는 카리코 박사가 교수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일종의 자기체념에 가까운 고백을 했다고 말한다. 즉, 카리코는 언젠가부터 교수 승진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연구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식의 생각을 굳혔던 셈이다. 연구자로 과학계에 발을 들여보지 않은 사람에게 카리코가 연구비와 승진으로 인해 겪은 고통을 설명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스케일스 교수는 카리코 박사가 평생을 쌓아온 연구경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었고,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연구자로서의 카리코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현재의 왜곡된 과학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연구 이외의 기술에 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현재의 과학 생태계는 연구자에게 연구 이외의 다양한 능력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라면 학계를 떠났을 이 시기에도 카리코는 실험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그의 활기차고 긍정적인 연구열정은 실험실 구성원 모두에게 전염될 정도였다고 한다. 학계는 카리코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었지만, 그것이 과학자 카리코가 실패했음을 뜻하는건 아니었다. 모더나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놀라, mRNA 백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계를 떠나 바이오엔테크이라는 회사로 옮길 수 밖에 없었지만, 그는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정치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학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선택 덕분에, 학계에서 버림 받았던 과학자 카리코의 연구는 화이자의 백신 개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진출처 https://www.wbur.org/news/2021/02/12/brutal-science-system-mrna-pioneer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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