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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멀고 힘들 수밖에 없는 탄소중립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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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멀고 힘들 수밖에 없는 탄소중립의 길

2021.11.24 08:00
1일(현지시간)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당장의 행동’을 강조하는 세계 주요 인사들의 발언이 연달아 나왔다. COP26 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이 1일(현지시간)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제공
1일(현지시간)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당장의 행동’을 강조하는 세계 주요 인사들의 발언이 연달아 나왔다. COP26 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이 1일(현지시간)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제공

세계 120개국의 정상과 197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해서 떠들썩하게 시작됐던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그런데 글래스고 기후협정에 대한 평가가 낙제점이다.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의 온실가스 거대 배출국들이 2030년 감축 목표 강화를 거칠게 거부해버린 탓이다. ‘2050년’으로 못 박겠다던 탄소중립의 달성 시점도 ‘금세기 중반’으로 후퇴했고, 탄소 저감 장치가 없는 석탄 화력의 ‘단계적 폐지’(phase out)도 ‘단계적 감축’(phase down)으로 축소되었다. 과연 인류가 탄소중립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불확실해져버렸다.

 

쉽지 않은 현실의 벽

 

 인간에게 에너지는 추위를 물리치고, 어둠의 공포를 극복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수단이다.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진화적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소화기관의 에너지 소비가 줄어드는 대신 뇌가 더 많은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체중의 2%를 차지하는 뇌가 에너지의 25%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한 인간에게 에너지는 가장 중요한 ‘생존 수단’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에너지가 국가의 경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탄소중립을 향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50만 년 동안 사용해왔던 장작·숯·석탄·석유·천연가스(LNG)와 같은 화석연료와의 영원한 결별을 뜻하기 때문이다. 모든 에너지의 소비를 전기에 의존해야 한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 전기는 편리하고 안전한 에너지다. 그렇다고 누구나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기를 사용하려면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하고, 전기요금의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아직도 지구촌에는 전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금도 매년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가옥에서의 개방형 연소로 조기 사망한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인 우리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소비하는 에너지 중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0%에 지나지 않는다. 탄소중립을 추구하려면 나머지 80%의 에너지 소비를 전기로 대체해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그런 기술과 경제력이 있는지 불확실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기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가스레인지와 보일러를 포기해야 한다. 물론 연탄과 기름도 쓸 수 없다. 조리와 난방을 모두 전열기로 대체해야 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 현장의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하다. 석탄·천연가스 보일러를 전기로로 대체하는 일도 쉽지 않다.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유지·관리도 쉽지 않다. 더욱이 전기만으로는 도대체 불가능한 공정도 있다.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제철공정이 대표적이다. 전기로의 열만으로는 철광석의 산화철을 화학적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수소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전기를 생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진정한 의미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발전 수단은 공상 과학 영화에나 등장하는 환상일 뿐이다. 친환경으로 알려진 태양광·풍력의 극심한 변동성·간헐성을 극복하는 일도 쉽지 않다. 최근의 중국발 요소수 대란도 사실은 지난 7월 중국 동북지방에 집중적으로 설치해둔 풍력 발전설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전력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많은 비가 내리면서 태양광도 맥을 추지 못했고, 정치적인 이유로 석탄화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정말 탄소중립을 원한다면 원자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요란한 수소 경제도 실현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은 미래의 기술일 뿐이다.
 

1984년부터 2020년까지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의 농도를 분석했다. 세계기상기구 제공
1984년부터 2020년까지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의 농도를 분석했다. 세계기상기구 제공

명분과 현실의 괴리

 

기후 변화의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는 온실가스의 배출량 감축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당위적 요구가 돼버렸다. 더욱이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가 기후 변화의 중요한 원인인지에 대한 과학적 논란도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상학자들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진 것도 그런 결과였다. 일본 출신의 마나베 슈쿠로는 적외선에 의한 복사가 대기권의 대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독일의 하셀만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공짜로 되는 일이 아니다. 단순히 화려한 구호만 외친다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고, 탄소중립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산업구조도 통째로 뜯어고쳐야 한다. 아직도 개발하지 못한 미래의 기술이 필요하고, 국민과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비용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의 책임과 해결에 대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을 산업혁명 대비 1.5도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그동안 국제적으로 합의한 공동의 목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4600억 톤으로 제한해야만 한다. 현재의 추세로는 11.5년 치에 해당하는 적은 양이다. 제한된 탄소 예산(carbon budget)을 197개국이 공정하게 나눠서 분담하자는 것이 선진국의 분명한 입장이다.


개발도상국도 탄소 예산에 여유가 많지 않다는 현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빠듯한 탄소 예산을 분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강조한다. 현재의 탄소 예산을 동나게 만든 책임을 선진국들에게 무겁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25%를 미국이 배출했고, EU가 22%로 바짝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중국도 12.7%나 되지만, 인도는 3.2%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격차도 심각하다. 2020년 미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4.24톤이지만, 중국은 7.41톤이고, 인도는 고작 1.77톤에 지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요구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선진국들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정당한 ‘배상’을 하고,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도국도 온실가스 배출을 통한 산업화의 성과를 누리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무작정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은 더욱 낭패스럽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고, 1인당 11.66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의 책임을 외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9%이고, 역사적 책임도 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우리가 무작정 앞장서서 국제 사회에서 어지러운 막춤을 춰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다.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평가해서 신중하게 대응하는 지혜가 절실한 상황이다. 국제 사회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화려한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위키미디어 제공
위키미디어 제공

흔히 우리는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살리자’고 외친다. 그런데 200여 년 사이에 지구 대기의 평균 온도가 1.5도 올라간다고 지구가 몸살을 앓게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 반지름이 6천 킬로미터가 넘는 지구의 내핵에는 온도가 섭씨 6000도나 되는 뜨거운 원자로가 들어있다. 표면을 덮고 있는 십여 킬로미터 두께의 지각의 밑에는 모든 것이 시뻘겋게 녹아있는 맨틀이 꿈틀거리고 있는 곳이 지구다.


지구의 대기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구 대기의 온도는 지역·시간·계절에 따라 요동친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10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흔하다. 계절에 따른 평균 기온의 변화는 더욱 심각하다. 그런 변화를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푸른 행성 지구다. 그런 지구가 경험했던 역사적 변화는 상상을 넘어선다. 45억 년의 역사에서 지구촌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던 대빙하기가 적어도 5차례나 있었다. 극심한 온난기도 자주 발생했었다. 5천 년 전 홀로세 최적기의 평균 온도는 지금보다 7도 이상 높았다는 분석도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지구 자체에 대한 것이 절대 아니다. 온실가스 과다 배출에 의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어도 지구라는 행성에게는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실 지구 온난화는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표면에서 어렵사리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인간의 문제다. 우리가 지구 온난화에 의한 자연환경과 생태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지구의 대기환경을 어지럽게 만드는 가해지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이 바라보는 방관자적 자세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살려주기 위해 등장한 구원 투수가 절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노력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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